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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분열에 선수친 서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서독이 「평화외교」의 공세에 나섰다. 「에르하르트] 수상은 최근 세계의 주요국가에 「평화각서」를 보내고 핵무기의 폐기와 불가침조약의 체결 등 국제적인 긴장완화와 항구적인 세계평화의 길을 트자고 제의한 것이다.
「에르하르트」수상정부의 이러한 「평화외교」는 그 기대되는 성과보다는 서독이 마침내 스스로의 능동적인 행동으로 「구각탈피」의 선수를 쓰기에 이르렀다는데 획기적인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서독은 지금까지 분단국가의 악조건과 특히 「할슈타인」원칙의 굴레에 발묶여 그 외교는 숨가쁜 수세를 면치 못했다.
따라서 서독외교는 「할슈타인」의 좁은 울타리 안에서 경제적인 실리를 찾고 동독정권의 국제무대 진출을 저지하는데 일관 되어왔다.
그러나 60년대에 들어서서 서독은 동구공산권에 대한 경제외교를 활발히 하면서 「전후20년」의 벽을 뚫는 격변의 바깥바람에 보조를 맞추기 시작했다.
이번 「평화외교」는 특히 「드·골」의 독주에 의한 「나토」의 분열위기, 서구단결에 대한 적신호에 시침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프랑스」는 사실상 「나토」탈퇴의 태도를 굳혀 미국은 주불미군을 철수시키고 「프랑스」는 주독불군을 철수시키게됨으로써 소련의 무력을 등뒤에 느끼고 있는 서독은 국방체제의 재고까지 강요당하게 됐다. 「아데나워」-「드·골」의 「밀월시대」이래 서독이 기대온 미·불·독의 군사력에 의존하는 방위체제는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월남전의 여파로 미국은 서구주둔군의 일부를 철수시키고 있다.
여기서「에르하르트」수상은 서독자체의 방위라는 지엽적인 문제보다 핵무기의 폐기와 국가간의 불가침조약체결로 항구적인 세계평화로 세상의 관심을 돌려보자는 의도에서 「평화각서」의 원대한 포석에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에르하르트」수상은 오는6월 소련을 방문하는 「드·골」 「프랑스」대통령이 서독의 희생을 댓가로 하는 불·소 불가침조약이나 그 밖의 정치적인 협상을 마련하지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래서 서독은 지난 3월 동서양독 정치인들의 회담에 참석하고 소련과의 통상협정연장을 위한 협상에 동의할 뜻을 비춤으로써 대소정책에 임하는 신축성 있는 태도를 보이려고 애써 노력하고있다.
「퐁피두」 「프랑스」수상이 13일 의회연설에서 핵무기에 접근하려는 서독의 태도가 못마땅한 듯 말했는데 이렇게 되고 보면 「에르하르트」수상의 「평화각서」는 「파리」의 움직임을 예견한 「선수」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에르하르트」수상은 자신의 「평화각서」가 호의적인 반응을 받았다고 보고하고있다. 그러나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성과를 가져올 것인가는 점치기 어려운 일이다.
다만 「드·골」의 소련방문을 앞두고 개시된 서독의 능동적인 전면외교, 특히 그 평화공세가 불·소 수뇌회담의 독일문제 토의에는 다소나마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빌리·브란트」 서「베를린」시장은 오는 5월 동독사회주의통일당(공산당)의 당대회에 참석키로 했다.
동독정치인들도 서독의 사민당대회에 참가한다.
이것은 서독의 전후20년 역사에 전례 없이 파격적인 「기록」이다.
동·서독의 정치인교류, 「나토」분열의 위기 속에서의 서독의 정치적 발언권 강화를 위한 외교전의 「내친걸음」이 분단국가 서독에 어떤 득실을 가져올 것인가 하는 문제는 같은 운명의 멍에를 지고있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주목의 대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핵무기의 폐기나 불가침조약의 체결 같은 문제는 전면군축과 더불어 해결할 문제다.
여기 「에르하르트」의 「평화각서」를 통한 세계긴장완화를 위한 시험적인 노력의 한계가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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