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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행위 방지법의 구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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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검찰은 영국의 「공무원독직법」을 모방하여 「오직행위방지법」을 만들 구상을 세우고 있다한다. 보도된 바에 의하면 이 법은 ①공무원이 금품을 받았을 때는 명목여하를 불문, 채무·상권관계의 뚜렷한 방증이 없는 한 뇌물로 간주하고 ②공무원이 직무상에 관련되어 수회를 했거나 손해를 끼쳤을 때는 7년간 공직취임자격을 박탈하거나 혹은 공직에서 영구히 추방하며 ③검사에게 형사소추권외에 공무원에 대한 파면 견책 등의 행정처분권까지 준다는 것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한다.
이와 같은 입법구상은 물론 나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현하 우리 나라 공무원의 부정·부패가 확대되고 또 심층화하여 법을 가지고서도 파헤치고 다루기 어려운 단계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직시할 때 과연 이런 입법이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막는데 어느 정도의 도움이 될까 근본적으로 의문이다. 우리사회에 공무원의 부정·부패가 최근 수년 내 격증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고 벌써 그 극한까지 달한 느낌이 있다는 것은 결코 이를 다스리기 위한 법규가 미비·부족하기 때문은 아니다. 사실은 정반대로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다스리기 위한 법규는 형법이외에도 수개특례법이 있어 오히려 과잉한 상태에 놓여있는 것이다.
이처럼 단속법규가 과잉상태에 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의 범죄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증가하는 경향에 있다는 것은 대체 무엇 때문인가.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우리가 보는바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자체가 부정·부패를 철저히 단속하고 부정·부패의 뿌리를 뽑아보겠다는 결의가 빈약하기 때문이 아닌가고 생각한다.
비근한 예로서 박대통령이 연두교서에서 5대 사회악 제거를 각별히 다짐하고 사직이 특별수사 활동을 전개했는데도 불구하고 큰 사건이 모두 사실상 흐지부지되고 말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서울시청 및 보건소부정사건은 장부만 압수하고 구속은 못했고, 홍삼부정사건은 증거없다하여 수사를 중단했고, 고급승용차밀수사건은 4백여대에 겨우 2대만 압수했고, 윤골유도입 부정사건은 관계자를 소환조차 아니했다. 이처럼 중대한 부정·부패사건을 처리하는 정부당국의 태도를 보면 정부가 과연 부정·부패의 뿌리를 뽑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는지부터를 의심치 않을수가 없다.
정부있는 곳에 부정·부패는 반드시 깃들이기 마련인데 우리 나라처럼 공무원이 박봉에 시달리고있는 조건하에서는 실로 모든 공무원이 부정·부패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정·부패가 전혀 없는 청렴한 정부를 기대치 않는 것이요, 우리사회의 경우 부정·부패의 발생은 일종의 사회악으로서 불가피한 면이 있다는 것을 시인하는데 주저치 않는다. 그러나 매우 주의해야 할 것은 발생한 부정·부패를 철저히 파헤치고 엄중히 처단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하면 부정·부패는 어둠 속에서 어둠 속으로 파묻히기 마련이요, 또 이런 경향이 일단 조성되면 부정·부패를 사회적으로 관용해주고 부정·부패에 대한 대중적인 증악감마저 마비되기 쉽다는 것이다.
우리가 통탄을 금할 수 없는 것은 부정·부패에 대한 미온적인 처리가 은연중 부정·부패를 관용하는 사회적 기풍을 조성했고 대중의 정의감을 우둔케 하여 부정·부패를 증오하는 심정마저 미약케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부정·부패의 발생을 별로 겁내지 않는다. 그러나 부정·부패의 암매장이 가일층의 부정·부패가 생겨날 수 있는 온상을 조성하는 것을 심히 두려워한다. 정부는 백의 입법보다도 이미 발생한 부정·부패를 하나도 남김없이 엄중히 파헤치는 작업부터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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