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의 ‘위대한 개츠비’, 그리고 욕망의 끝

중앙일보

입력

2001년 10월 11일, 사상 최악의 테러라 할만한 뉴욕 세계무역센터 참사가 세계인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대재앙은 아침 출근 시간인 8시 45분, 세계 경제의 심장부라 할만한 맨하튼 월스트리트 중심가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에서 시작됐다.

두 대의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를 들이받았고 9시 32분에는 뉴욕증권거래소의 모든 거래가 중단됐다. 미국 경제를 아수라장으로 만든 이번 사건은 81년 전 월스트리트의 폭파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이냐?
1920년 9월 16일, 월스트리트와 브로드 스트리트가 마주치는 교차로에서 위력적인 폭발음이 들렸고 근처는 물론 반 마일 떨어진 곳의 유리창이 깨지는 대형사고가 일어났다. 그 해는 월스트리트가 세계의 금융 중심가로 발돋움한 지 6년째 되는 해였다.

아직 안정되지 못했던 월스트리트는 금새 혼란에 빠졌고 사람들은 증권이나 돈보다 자신의 목숨을 챙기기에 바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사건은 잊혀졌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월스트리트를 더욱 강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사건은 결국 해결되지 않았지만 이런 교훈을 얻게 된 것이다.

“어떤 면에서 금융가의 투쟁은 전쟁보다 더 격렬하게 무자비하다. 왜냐하면 전쟁에서는 적어도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는 알기 때문이다.” 1920년대의 미국의 주식시장을 겪은 필라델피아의 변호사 윙켈만이 한 말이다.

1920년대 미국의 증권시장 얘기가 새삼스러울지 모르겠지만 당시 미국의 증권시장과 현재 한국의 증권시장의 구조는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그런 의미에서 뉴요커의 경영전문 필자인 존 브룩스의 『골콘다』(이동진 옮김, 그린비)는 시기적절한 한국 증권가의 참고서가 될만하다.

이 책은 1920년대 주식시장에 불어닥친 활황 장세와 1929년의 대폭락, 공황, 그리고 연이은 뉴딜정책에 이르기까지 월스트리트 역사를 한 줄에 꿴다. 책 제목인 ‘골콘다’는 누구나 지나가기만 하면 부자가 됐다는 인도 동남부 전설의 도시. 월스트리트를 상징하는 데 이보다 더 적합한 비유가 없을 듯하다.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드는 탐욕의 시대, 욕망과 우둔함이 판을 치는 시대, 쉽게 돈이 오고 가는 시대가 바로 1920년대였다.

『골콘다』의 매력은 그런 혼돈의 시대를 제대로 재현했다는 데 있다. 존 브룩스는 월스트리트 영웅들의 일화와 실존 인물들의 증언, 여러 출판물을 재구성해 한편의 ‘증권드라마’를 만들어낸다. 물론 주인공도 있다.

‘골콘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리차드 위트니라는 인물이다. 월가의 보수파 이익을 대변하던 위트니는 자신의 벤처투자가 실패하면서 돈 문제에 휘말리게 된다. 금주령 폐지 직전, 작은 주류 회사에 투자했지만 꺼지는 주식시장과 함께 벤처회사의 주식회사도 끝없는 하락을 거듭한 것이다. 몇몇 거대 중개인과 은행들이 위트니를 거들었고 이들은 곧 수백 만의 사람들을 생지옥으로 몰아넣게 된다.

투자한 벤처회사의 주가가 하락하자 주가를 받치기 위해 그는 계속 주식을 사 모았다. 끝없는 악순환이 쳇바퀴 돌 듯 이어졌고 마침내 위트니는 파멸한다. 하지만 한 사람의 파멸이 가져다 준 교훈은 컸다. 정부는 리차드 위트니 덕분에 월스트리트에 대한 규제와 시스템을 갖출 수 있었다. 무법천지였던 월스트리트가 한 악당 때문에 평화로운 세상으로 바뀐 것이다.

무법천지 월스트리트를 뒤바꾼 인물
사실, 그에게 악당이란 표현은 적당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증권가는 악당과 보안관이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욕망으로 가득 찬 악당들만 들끓는 곳이니까. 일확천금을 꿈꾸는 주식시장은 이성으로 위장된 광폭함이 지배하는 곳이다. 지은이는 위트니의 이야기를 끝마치며 미국인의 생활에 대한 조지 산타야나의 말을 인용한다.

“갖가지 훌륭한 도덕성을 겸비한 설교자들이나 교수들은 많지만, 미국이란 열심히 일하고, 친절하며, 스포츠맨처럼 규칙도 지켜가는 가운데 스스로 좋아서 하는, 그리고 그에 따라 보상도 받는 그런 나라이다.”(374쪽)

위트니의 파멸은 당연한 것이며 욕망은 부스러지기 마련이다, 쯤으로 위의 말을 이해해도 될까? 어쩐지 그럴 것 같지 않지만 한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욕망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 『골콘다』는 한 사람의 파멸을 통해 우리의 욕망과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김중혁/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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