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경매 뜨거운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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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7면

첫걸음은 교육부터
김은영(오른쪽)씨가 경매에 투자하기 위한 첫 단계로 교육을 받고 있다.

경매물건 챙기기
좋은 경매물건을 고르기 위해 교육 동료와 목록을 살피고 있다.

현장답사는 기본
봐둔 물건의 현장을 답사해 투자여건을 꼼꼼히 챙기고 있다.

경매 법정에서는
목록을 다시 한 번 살핀 뒤 서류를 작성해 입찰함에 넣으면 응찰이 끝난다(입찰 사진은 서울 서부지법에서 연출한 것임).

법원 경매시장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우량 물건이 늘고, 입찰장은 연일 사람들로 북적인다. 투자가치가 있는 물건은 수십대 1의 경쟁률도 흔하다. 1998~2000년 외환위기 직후의 뜨거웠던 열기와 견줄 만한 수준이다.

경매정보 전문업체인 ㈜지지옥션에 따르면 올 들어 이달 28일까지 입찰에 부쳐진 물건은 총 11만9550여건. 이는 지난해 1~3월의 9만1380여건에 비해 30% 정도 늘어난 것이다.

지지옥션 강은 팀장은 "지난해 체감경기가 악화되며 대출금 연체자가 늘고, 2003년 10.29대책 이후 부동산 시장이 가라앉아 입찰에 부쳐지는 물건이 늘고 있다"며 "경매 투자자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투자환경이 좋아지면서 입찰자도 부쩍 늘었다. 서울 아파트의 경우 물건당 평균 응찰자가 지난해 말 4.8명에서 올 2월에는 6.4명, 3월(23일까지) 5.5명이었고, 수도권 아파트 역시 지난해 말 4.2명에서 올 3월에는 6.6명을 기록했다.

신도시 개발 및 충청권 행정중심도시 이전 등의 재료로 토지물건에도 사람들이 몰린다. 수도권 토지의 경우 지난해 말 낙찰률(입찰물건수 대비 낙찰물건수)이 37.2%였지만 올 들어 40%대를 넘고, 3월에는 46.6%로 치솟았다.

서울 송파구 잠실에 사는 주부 김은영(37)씨. 대학 졸업 후 10여년간 은행에 다녔던 김씨가 부동산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2년,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면서부터다. 평소 부동산에 문외한이었던 김씨가 공인중개사 공부를 시작한 것은 "새 일을 해야 한다"는 조바심 때문이었다. 은행원 출신이지만 재테크에 부동산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도 한 몫 했다. 자격증을 따고 얼마간 동네 중개업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김씨는 정부 규제로 거래가 끊기자 경매로 진로를 바꿨다. "처음엔 경매라면 무조건 어렵다는 생각에 망설였어요. 하지만 집값이 너무 올라 싸게 사서 시세 차익을 올릴 수 있는 곳은 경매시장이라는 확신이 들어 도전하기로 했죠."

# 2003년 10월~2004년 8월

경매 공부에 올인하다

김씨가 경매를 배우기 위해 처음 찾은 곳은 일반 학원과 인터넷 동영상. 하지만 강의가 이론 위주여서 막상 입찰을 해보자니 두려움이 앞섰다. 나름대로 감각을 익히려고 법원을 수없이 들락거렸지만 초보자에게 벽은 높기만 했다.

그러다 지난해 7월 중앙일보부동산아카데미의 '실전 부동산경매'를 듣고 눈을 뜨기 시작했다. "버는 것 없이 자격증이다, 공부다 해서 학원과 책값에 들인 돈이 적지 않은데 또 새 강의를 듣겠다는 말이 차마 안 떨어지더라고요. 하지만'돈 걱정 말고 하고 싶은 거 다 해보라'고 북돋워준 남편의 격려가 큰 힘이 됐어요."

이런 김씨가 강의실에서도 열정을 보인 건 당연하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나타나면 강사를 찾아가 귀찮을 만큼 괴롭혔다. 강사인 GMRC 우형달 사장은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데 서슴지 않았고, 교육생 중에서도 눈에 띄게 적극적이었다"고 칭찬했다. 김씨는 함께 강의를 받고 있는 동료와 함께 연습삼아 몇 번 입찰도 해봤다. 하지만 경쟁률과 예상 낙찰가를 가늠하지 못해 고배를 마셨다.

# 2004년 10월~12월

목표 물건을 정하다

드디어 실전. 인터넷 경매 정보사이트 회원으로 가입해 300~400건의 물건을 검토한 뒤 서울 은평구 응암동의 한 다가구주택을 대상으로 잡았다.

최소 한 두 번 이상 유찰이 불가피해 시세의 절반 이하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금융기관 근저당을 제외하고 임차인이 12명이나 있어 명도가 쉽지 않은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일반인은 섣불리 달려들 수 없는'악성'물건이다.

당장 현장으로 달려갔다. 주변 집들이 1990년 이전에 지은 것인데 비해 이 집은 95년에 신축돼 깨끗해보였다. 명지대가 바로 옆에 있어 학생 임대수요도 많을 것 같다. 인근 중개업소에 들러 주변 시세를 파악했다. 12가구를 월세 줄 경우 보증금 1억2000만원에 월 220만의 수익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됐다. 모두 전세로 돌리면 입찰금액 및 제 비용 전부 회수될 것 같았다. 가좌뉴타운 바로 경계선에 있어 뉴타운 개발에 따른 시세 차익도 예상됐다. 김씨는 낙찰 전까지 대여섯 번을 찾아가 자신의 판단이 맞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 2005년 1월~2월

낙찰 성공, 명도도 술술

김씨의 생각대로 이 물건은 벌써 3회나 유찰돼 감정가 4억900만원짜리가 2억900만원으로 51%로 떨어진 상태였다.

드디어 1월 11일 4회 입찰기일. 김씨는 일반 개인들이 참여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높은 금액은 쓰지 않기로 했다. 예상대로 단독입찰해 감정가의 54%인 2억2100만원에 낙찰했다. 구리 토평에 전세를 준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고, 나머지는 은행 퇴직금으로 충당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고생이 시작됐다. 명도라는 큰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12가구의 세입자를 얼굴 붉히지 않고 순순히 내보낼 수 있는'전략'이 필요했다. 김씨는 먼저 구멍가게 등 동네 상인들과 친해지기로 했다. 집이 경매로 나오게 된 경위부터 세입자 개개인의 성향까지 귀동냥했다. 선순위 세입자 중 한 명이 임차권 등기를 하지 않은 채 주민등록을 옮기고 이사를 가 김씨에게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주장할 수 없는 '대항력 없는 임차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가장 큰 수확이었다.

세입자들에게 거의 매일 눈도장을 찍었다. 자신이 낙찰자라는 것을 알리고, 세입자들에게 최대한 손해가 없도록 하겠다며 안심시켰다. 처음엔 문전박대하던 사람들도 차츰 마음의 문을 열고 金씨의 입장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보증금을 다 못 받게 된 세입자의 억울한 사정도 마다 않고 들어줬다.

"살던 집이 입찰에 부쳐졌는데 배당신청도 안 할 만큼 경매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았어요. 보증금을 다 못 받게 돼 억울해 하는 임차인을 보니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김씨가 이 집을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린 덕분에 배당기일(4월 1일) 전인데도 벌써 절반인 6가구가 이사를 했고, 3가구가 임대를 들어왔다. 김씨는 관리가 소홀해 망가진 집수리에 여념이 없다. 집값이 오르면 팔 생각도 해본다.

# 그 이후

공부해야 성공한다

김씨는 요즘도 일주일에 4~5일은 물건을 보러 현장을 다닌다. 특정 지역을 테마로 잡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줄곧 걸어다니는 식이다. 하루이틀은 관심 물건의 등기부등본이나 관련 서류를 열람하는데 쓴다.

"물건을 많이 살펴보고 권리분석을 잘 해야 합니다. 다리 품을 판 만큼 좋은 물건을 확보할 수 있지요. 여러 사람의 의견을 구하는 게 좋습니다. 똑같은 해답이 나오면 그 때 결정하세요."

물론 실패 경험도 있다. 얼마전 서울 성수동의 한 재개발 지역내 주택을 낙찰했는데 잔금 납부 하루 전날 경매가 취하돼 입찰보증금만 한 달 이상 묶인 적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이 경매에 대한 자신감을 키워주리라 믿는다.

서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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