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7)발레|김혜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오색의 찬란한 조명과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는 무대에서, 「육체의 시」를 쓰는 시인들- 그들을 우리는 무용가라고 한다.
그러나 마냥 아름답고 감미로운 그 작업의 뒤안길에는 누구보다도 외로운 자조의 그림자가 깃들여 있음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한국에서는 한 사람의 무용가가 되려면 먼저 천재가 되어야 해요.』- 젊고 아름다운 발레리나 김혜식 양의 이 역설적 「천재론」은 사뭇 도전적이기도 하다. 그녀는 말한다.
무용가가 무대에 서려면 우선 훌륭한 무용수이기 전에 훌륭한 안무가이어야 하고 안무가이기 전에 음악·의상·무대 장치·조명의 전문가이어야 하고 무용가이기 전에 우선 훌륭한 매니저이어야 한다.
『무용을 흔히 종합 예술이라고 하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는 딴 의미에서 무용이 종합 예술이라는 걸 실감하고 있어요. 비극이죠?』-예술가가 「매니지먼트」까지 겸해야 하는 이 엄청난 미분화의 현실-이것이 우리 무용계의 자화상인 것이다. 마치 「빈사의 백조」와도 같은…. 「신무용」이란 이름의 새로운 서구예술이 이 땅에 접목 된지 올해 꼭 40년이 되었지만 발레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의 발레역사는 6·25동난 이후부터 형성되었다고 봅니다. 그 당시 일본서 갓 돌아온 R씨를 중심으로 국내에서 활약하던 무용인들이 모여 과히 부끄럽지 않은 발레 무대를 관객에게 보였지요.』 무용 평론가 A씨는 우리 발레에 대해서 극히 낙관적인 견해를 말한다. 수준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몇몇 「대가」들의 공연에 국한되는 문제지만 무용 관객도 점차 형성돼 가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평론가 B씨의 견해는 좀 다르다. 『해마다 수십명의 학생이 무용과에 들어갑니다. 물론 본인의 소질도 문제되겠지만 나올 때보면 대부분이 아무 것도 배운게 없다는 거예요.』 유능한 교사가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하긴 본고장 「발레」를 제대로 구경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리고 10여년씩이나 발레를 하다가 하루아침에 훌쩍 상업 무대 (쇼)로 전락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얘기.
이화여자중고교와 이대체육과를 거치는 동안 제1회 신인 예술상에서 서양 무용부 차석, 제1의 「동아」 신인 무용 콩쿠르에서 금상을 차지했고 현재는 서울예고와 한양대학의 무용강사로 있는 김혜식 양. 그녀는 누구 못지 않은 화려한 경력과 가능성을 가졌으면서도 아직 제2군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제3세대의 비극이다.
『무용은 완성에의 길이 멀어요. 그래서 좌절감을 느낄 때도 있지요. 하지만 한가지 꿈이 있어요….』 유명한 「로열·발레」서 공부해 보겠다는 그 꿈은 현재 거의 실현 단계에서 주춤하고 있다. 1년 기간인 「어퍼·코스」의 입학 허가서를 작년에 받고서도 왕복 여비 1천4백「달러」 학비 연3백75「실링」이 마련되지 않아 연기, 금년 9월 학기마저 놓치면 그 꿈은 영원히 깨어지는 것이다.
『우리 무용은 보다 넓은 시야와 새로운 창조성에서 내일의 운명이 지워질 거예요. 무용은 자기 스스로가 하나의 악기와 같은 것이니까요.』 현실에 대한 고발보다 자기 채찍질의 미덕.
그 속에 새 세대의 건강한 「모럴」이 숨어 있는지 모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