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동네] 속 빈 미술행사 시끌벅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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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잖은 돈이 들어가는 미술관련 행사를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투어 열고 있다.

이달에만 해도 세계도자기엑스포2001을 위시해서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전북서예비엔날레, 서을타이포그라피비엔날레, 김포국제조각프로젝트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열리고 있다.

문화와 예술을 이렇게 이벤트적이고 축제적이며 떠들썩한 볼거리로만 여기는 분위기가 불만이다.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행사장, 유원지 같은 어수선한 들썩거림 및 먹자판이 벌어지는 질펀한 와중에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문화체험과 향수는 실종되고 있는 듯하다.

차분하게 미술문화를 들여다보고 사색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보다는 오로지 실적 위주, 관람객 유치경쟁, 언론홍보만이 능사로 진행되는 후진적이고 저급한 그 모든 행사들이 싫다.

우선, 그런 행사들은 늘상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나버리고 지속적으로 축적되지 못한다.

재정적자에 허덕이면서도 자치단체장들이 치적을 위해, 혹은 행사와 관련된 예산을 따내고 그 예산을 서로 나눠먹는 식으로 한 바탕 해치운 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잠잠해진다.

그런 전시를 맡게 된 관계자들 역시 돈이 되는 행사만 골라서 따내느라 혈안이 되고 추잡한 로비가 오고간다.

그런 행사와 전시들이 진정 우리 미술문화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느냐를 냉정히 따져보아야 한다.

나로서는 그런 눈먼 돈들이 좀더 우리 미술문화의 인프라 구축에 쓰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작업실이 없어서 반 지하나 시골의 버려진 농가에 들어가 작업하는 작가들은 얼마나 많은가?

전시를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개인전은 꿈도 못꾸는 작가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우리 작가들을 외국에 알릴 수 있는 제대로 된 자료집, 화집조차 갖고 있지 못하지 않은가?

외국과 교류전을 하고 싶어도 예산이 없어서 작가들이 자비를 들여 외국 전시에 출품하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그런 저런 것을 다 떠나서라도 작품을 팔아서 먹고 산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대다수 작가들의 작업을 선별해서 구입해주고 그네들이 잘 견뎌나갈 수 있는 재정적 뒷받침 내지 제도적인 틀을 만들어주는 일이 시급하지 않을까?

박영택 경기대교수.미술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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