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항공모함에도 '인터넷 열풍'

중앙일보

입력

인터넷이 미국 항공모함 수병들의 생활을 바꿔 놓고 있다.

e-메일을 통해 가족과 안부를 주고받고 대학원 응시신청서를 다운로드받기도 하며 미국의 전통 축제인 할로윈에 조카를 위해 선물을 주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항모 위치 등 금기사항만 적지 않으면 인터넷 접속을 통해 지상에서 하던대로 일상생활을 계속 향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23일 인터넷이 아라비아해에서 대 아프가니스탄 군사작전에 참가하고 있는 항공모함 칼 빈슨호 수병들의 생활을 이렇게 바꿔놓고 있다고전했다. 다음은 기사 요약. <항모 선원이 비행갑판 아래 도서관에서 30분간 컴퓨터를 이용하려면 하루전 예약을 해야 한다. 남녀 수병 5천여명이 서로 인터넷을 이용하려 하기 때문이다.< p>

수병들은 일단 항모에 승선하면 미로와 같은 선실에서 고독감과 밀실공포증에 직면하고 비행기납치 테러와 탄저균 공포와 같은 끔직한 소식을 접하기도 하며 아프간 공습을 위해 이륙하는 전투기들의 요란한 소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터넷은 이런 선원들에게 한가지 위안이 된다. 그것은 이런 전쟁 와중에서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배리(25) 대위(전시상태에선 퍼스트 네임이나 애칭만 사용 가능)는 "이번 (아프간 전쟁)은 첫 인터넷 전쟁"이라며 "선원들이 함상에서 인터넷에 접속해 고국 소식을 접하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웹사이트를 통해 하버드 및 듀크 법과대학원을 타진하고 있는 배리는 "아라비아해 한복판, 그것도 전쟁 와중에 법과대학원에 지원할 것"이라며 "실천 배치가 더이상 장애가 되지 않는다. (인터넷 덕분에) 평소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군은 지난 99년 코소보 내전중 인터넷 접속을 크게 제한했다. 불과 몇년전만해도 수병들이 고국 소식을 접하려면 요약서를 압정으로 고정시킨 게시판으로 몰려들지 않으면 안됐다. 고국으로부터의 편지를 받아보려면 한달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수병들은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붕괴장면을 위성TV로 봤고 인터넷으론 신문기사를 읽었으며 걱정하는 가족들과는 e-메일을 주고받았다.

지난주 이모의 생일에 관해 어머니가 보내온 e-메일을 정신없이 읽었다는 말콤(20)이라는 수병은 "e-메일이 없었다면 내가 이미 그랬던 것보다 훨씬 더 미쳐 있을것"이라고 말했다.

함상에서의 컴퓨터는 바이러스 퇴치와 전략적 정보 누출 방지를 위해 한번에 며칠씩 사용이 금지된다.

이달 초 칼 빈슨호 전투기 조종사들이 아프간 공습을 하기전 선원들은 6일간 e-메일을 할 수 없었다. `입술이 해이해지면 배가 침몰한다'라는 불문율 때문이었다.

세탁일을 하고 있는 에인젤(19.여)은 "(e-메일 금지로) 아주 힘들었다"면서 "망망대해로부터 소식이 단절되면 당황하게 된다"고 말했다.

에인절은 e-메일을 통해 여동생들의 소식을 접하고 있는데 동생들이 학용품이 필요하다고 연락해오면 돈을 보내곤 한다.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권오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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