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출판유통 개선 출판인들이 나설때

중앙일보

입력

"매출의 10%는 언제 닥칠지 모를 도매상의 부도로 떼일 생각을 하는 게 속편하다."

한 출판인의 이같은 자조는 우리 출판 유통의 시한폭탄적 불안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불안감의 중심에 서적 도매상이 자리잡고 있다. 출판사와 중.소형 서점의 가교역을 하는 도매상은 출판가의 동맥 혹은 고속도로에 비유된다.

최근 그 고속도로에서 예사롭지 않은 사고가 한 건 일어났다.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주로 취급했던 한 중견 도매상이 부도(18억원) 를 냈다.어음을 받았던 출판사로 불똥이 튀어 몇몇 곳은 1억대의 손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1억대의 손실은 영세한 우리 출판계에선 막대한 액수다. 올 장사 다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일이 이렇게까지 된 이유로 출판계 전반의 불황을 우선 꼽을 수 있다. 미국 테러 사건이후 책은 더 팔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상황적 변수를 견디지 못하는 출판계의 취약한 구조가 사실은 더 문제다.

"어음 결제를 비롯한 전근대적 주먹구구식 유통 관행에 계속되는 제살깎기 할인경쟁은 제2, 제3의 부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출판계 인사들은 입을 모은다.

인터넷 서점과 각종 할인마트의 등장,그리고 잇따른 소형서점의 폐쇄 등 유통환경이 급변하는 것도 주요한 요인이다.

"출판사에서 정가의 60%에 책을 들여와 적어도 70% 값에 서점에 넘겨야 하는데 63%도 못받는 현재와 같은 출혈경쟁 구도에선 어떤 도매상도 살아남기 힘들 것"이란 비관적 전망조차 나온다.

다른 한 쪽에선 "갈 데까지 가다 경쟁력 있는 두세 곳의 도매상만 살아남아 수익구조를 제대로 갖추는 방향으로 구조조정될 것"이란 시각도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 출판사도 물론 찬바람을 이겨내야 한다.

그래서 1998년 도매상의 연쇄부도를 경험한 바 있는 출판사들은 사태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란 불안감에 '부도 예비금'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복합적이다. 누구의 잘못이라고만 딱 잘라 말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 참에 심리적 '부도 예비금'을 유통구조를 합리화하기 위한 '공익적 자금'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은 공익적 성격이 강한 문화상품을 다루는 출판계의 자율적 문제해결 의지를 과시하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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