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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성공하려면] 10. 국민 설득 대통령이 직접 나서라 (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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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981년 8월 3일 오전 11시, 미국 백악관 로즈가든.

레이건 대통령(재임 81~89년)이 기자들 앞에 섰다. 교통부 장관과 법무부 장관이 양 옆에 섰다. 이날 오전 7시를 기해 전국적인 파업에 돌입한 미국 직업항공관제사기구(PATCO) 노조원 1만3천여명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자리였다.

노조 측은 일반 정부공공부문 종사자 인상폭의 17배에 달하는 임금 인상을 요구한 반면, 연방항공국은 두 배 수준의 인상안을 제시한 상태였다.

양측은 이미 7개월간 밀고 당기는 협상을 거듭해왔다. '작은 정부'와 '인플레이션 억제'를 지상과제로 삼고 있던 레이건에겐 명백한 위기상황이었다.

레이건은 정면 승부 쪽을 택했다. 그는 "노조의 요구는 동료와 시민의 세금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이며 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하고 "48시간 이내에 업무에 복귀하라"고 통첩했다. 그의 육성은 TV와 라디오 생방송으로 국민들에게 생생하게 전달됐다.

실제로 레이건은 48시간 뒤인 5일 오전 11시까지 복귀하지 않은 노조원 1만1천여명 전원을 해고했다. 관제사들의 일방적 횡포에 반감을 가진 국민들은 이 조치를 환영했고, 대체요원이 투입되면서 사태는 수습됐다.

집권 초반 위기에 몰린 레이건은 '국민 직접 설득'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어 성공함으로써 사태를 반전시켰고, 결국 강력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었다.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려면 핵심 현안에 대해서는 국민설득에 직접 나서야 한다. 이런 저런 정책을 양산하기보다는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하고 설득해 집행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주요 정책에 대해서는 입안 단계에서부터 대통령이 직접 참여해야 한다. 대통령이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철저히 이해하고 고민하기 위해 핵심 관계자들과 충분한 토론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일만 터지면 장관에게 책임을 묻고 대통령은 일단 뒷전으로 물러서왔다. 사실상의 책임회피인 셈이다. 그러나 임기가 끝난 시점에는 모두가 대통령의 책임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럴 바에는 처음부터 참여해서 그때그때 직접 책임을 지고 주어진 권한도 충분히 행사하는 편이 훨씬 바람직하다.

일상 업무에 얽매이는 전임자들의 업무 스타일을 되풀이 한다면 주요 정책에 전력투구할 수 없게 된다. 총리에게 권한을 대폭 넘기고 대통령은 국가비전과 발전전략이라는 굵직한 과제에 전념해야 한다. 시간을 갖고 아는 사람을 만나고 현장의 목소리도 들어야 한다.

손학규 경기도지사는 "대통령이 권위주의적 스타일을 털어내고 국민 속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여당 뿐만 아니라 야당의원들도 만날 수 있는 분위기가 돼야 한다"고 당부한다.

대통령이 장관들 뒤에서 움직이는 지금까지의 행태는 전면 개선돼야 한다. "숨어 있는 대통령이 아닌 국민앞에 나서는 대통령이 돼야 한다. "(인수위 고위 관계자)

대통령이 특정 이슈에 매달리면 반대 입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체면이 깎인다는 생각을 버려야 가능한 일이다.

대통령이 국민과 직접 만나야 할 이유는 더 있다.

"아래서 일하는 사람은 대통령이 지시한 일이라도 이것이 대통령의 속마음이냐, 누가 써준 것이냐, 누가 옆에서 부추긴 것이냐를 구별한다. 이 가운데 대통령의 속마음인 것이 가장 큰 힘을 갖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중요 정책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직접 설득하고 나서야 한다."(이석채 전 정보통신부장관)

미국 대통령들은 라디오 주례 연설을 대국민 설득의 주요한 기회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33년 루스벨트의 노변정담으로부터 시작된 미국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은 지금도 매주 토요일 오전이면 어김없이 3분간 계속된다.

국민들은 정부의 가장 중요한 현안에 대한 대통령과 정부의 입장을 정확하게 알게 되고 협조를 결심하게 된다. '국민을 직접 상대하는 대통령'은 미국 민주주의의 자랑스러운 전통으로 자리잡았다.

"핵심 현안에 대한 결정은 청와대 대변인을 통하지 않고 대통령이 직접 발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 부시 대통령은 북한 핵문제 등과 관련해서는 기자들 앞에 직접 나서 정부의 입장을 발표하고 질문을 받는다. 우리 대통령도 자신의 철학과 소신을 육성으로 밝힐 때 국민들로부터 깊은 신뢰를 받게 될 것이다."(강원택 숭실대 교수)

국민 설득은 대통령이 국회를 대화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의원들을 무시하면서 국민을 설득한다는 것은 모순이다."(함성득 고려대 교수)

그러나 현실은 이와 거리가 멀다. 국회는 한마디로 찬밥 신세다. 대통령이 국회연설을 총리에게 대독시키는 것은 어느새 관행처럼 돼버렸다.

YS는 10차례, DJ는 13차례에 걸쳐 각각 국회연설을 한 것으로 돼있지만, 거의 다 '대독'이었다. 이 가운데 본인이 직접 한 것은 각각 세 차례, 한 차례 뿐이었다.

반면 미국 대통령은 한 해의 국정운영 방향을 담은 연두교서를 의회에서 발표한다. 연설 도중에는 여야할 것 없이 모든 의원들이 1백여 차례나 기립 박수를 친다.

"우리나라의 대통령도 국회에 자주 가 연설을 하고 의원들과 자주 토론을 해야 한다."(황성돈 한국외국어대 교수)

대통령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국회에 가야 한다. 시정연설을 총리가 대독하는 관행도 깨야 한다. 예산안을 낼 때 대통령이 국회 연설을 통해 국정 운영의 구상을 밝히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예컨대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취임 후 국회에서 국민과 의원을 상대로 초미의 현안인 북핵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밝히고 지지를 호소하는 것도 좋다.

국회 존중은 야당을 파트너로 인정하는 데서 비롯된다.

미국 대통령의 라디오 주례 연설은 방송 전에 녹취록 사본이 야당으로 전달되는 것이 오랜 전통이다. 야당은 이를 검토해 반박할 내용이 있으면 역시 생방송으로 국민에게 알릴 수 있다.

대통령이 국민의 대의기구인 국회를 대화의 중심무대로 활용하면 국회와의 대립관계를 미래지향적 상생(相生)의 관계로 전환할 수 있다.

결단은 전적으로 새 대통령의 몫이다.

<특별취재팀>

김수길 부국장, 이하경 정치부 차장, 김종혁 국제부 차장, 이세정.고현곤.송상훈 경제부 차장, 이영종 통일외교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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