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선 출마 반대 글 쓴 송요찬 전 육참총장 풀어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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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호 03면

1963년 8월 서울형사지법에서 당시로선 이례적인 결정이 나왔다. 서슬 퍼런 박정희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선 출마를 반대하는 글을 썼다가 구속된 송요찬 전 육군참모총장을 구속적부심에서 풀어준 것이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혁명정부가 권력 행사를 과하게 하더라도 종내는 올바르게 시정될 길이 있다는 점을 증명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법원엔 ‘용기 있는 결정’이란 격려 편지·전화가 잇따랐다.

김용준은 누구

이 결정을 내린 재판부에 있던 판사가 바로 김용준(74) 인수위원장이다. 김 위원장은 적지 않은 소신 판결로 후배 법관들의 존경을 받았다. 94년 3월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는 판결로 정부가 결단을 못 내리던 생수 판금을 풀어준 게 대표적이다. 그는 서울가정법원장을 거쳐 88년 대법관, 94년 헌법재판소장에 올랐다. 헌재소장 재임 중 과외 금지와 군 제대자 가산점제, 택시 소유 상한제, 동성동본 금혼 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렸다. 국민 기본권을 제한해 온 법령들을 철폐했다는 평을 받았다.

그가 걸어온 길은 인간승리의 표본이다. 세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어머니 등에 업혀 등교할 정도로 어려운 학창 시절을 보냈고, 중학생이던 6·25 때 아버지가 납북됐다.

그러나 서울고 2학년 때 검정고시에 합격해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대학 3학년(만 19세) 때 고시(9회)에 최연소 수석 합격을 했다. ‘최연소 판사’ ‘지체장애인 최초 대법관’ 기록도 세웠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좌우명으로 장애를 이겨 낸 것이다.

그는 헌재소장에서 물러난 뒤에도 법무법인 율촌 상임고문, 대검찰청 공안자문위원장,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 등 왕성한 활동을 해 왔다. 현재 법무법인 넥서스 고문이다.

정치권과는 거리를 둬 오던 김 위원장은 지난 10월 박근혜 선대위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박 당선인은 당시 “제가 존경하는 분이다. 앞으로 새누리당이 지향하는 소중한 가치, 법치와 원칙, 헌법의 가치를 잘 구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박 당선인은 27일 정권 인수인계 업무를 총괄할 인수위원장으로 그를 다시 불렀다. 첫 법조인 출신 인수위원장이다. 아내 서채원(72)씨와 2남2녀를 뒀다. 두 사위와 장남이 모두 법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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