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영 칼럼] 願生韓國 一投株式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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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경제 경기(game)가 활기차고 규칙대로 진행되는지 유의해야 한다. 그러나 심판은 경기에 참여해서 안되는데, 그럴 경우 누가 심판을 심판하겠는가?" 경제 예측의 토대가 모형(models)이냐 시장(markets)이냐를 논하면서 제임스 램지가 결론 대신 던진 반문이다.

심판이 선수가 돼서는 안된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아는 상식이다.

*** 경제 게임 누가 심판하나

심판의 잘못에 관중들이 야유하고 항의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오심이 즉시 번복되지는 않는다. 하물며 그 심판이 막강한 정부 권력일 때 감히 누가 심판하려 들겠는가?

되느니 안되느니 시비가 분분하던 주식투자 '신상품'이 내일 선보인다. 이로써 근로자나 자영업자가 5천만원 한도로 주식에 투자하면 이자와 배당에 대한 비과세를 비롯해 첫해에는 투자액의 5.5%, 이듬해는 7.7%만큼 세금을 공제받는다.

이런 계획을 내놓고 마구 밀어붙인 여당이나, 거기 못 이기는 척하며 미적미적 따라간 야당이나, 그것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충분히 알면서도 입 다물고 합의에 응한 정부나 모두 초등학생 수준의 상식을 어기고 있다. 물론 이것은 올해 연말로 끝나는 기존의 '근로자 주식저축' 제도의 연장이고 확대일 뿐이라는 변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1천23만 근로자의 46%가 면세점 아래서 허덕이는 형편에 이것이 과연 누구를 위하고 또 무엇을 노린 것인지 분명히 따져봐야 한다.

애초의 구상은 주식 투자에서 손실이 발생할 경우 그 손실 전액을 세금으로 보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네스북에 오르는 사태를 염려했기 때문인지 막판에 취소했다. 주식 투자만이 아니라 벤처 투자의 손실마저 보상하자는 희한한 대책이 거론되기도 했다. 정말 '우리 나라 좋은 나라'다. 기네스북쯤이야 못 본 체하면 그만이나, 주식 투자 손실을 정부가 물어준다면 전세계의 증시가 요절복통을 할 것이다.

이때의 복통(腹痛)은 웃어서 생긴 것 못지 않게 샘내고 부러워서 생긴 것이기 쉽다. 고려에 태어나서 금강산을 한번 보는(願生高麗國 一見金剛山) 소원 대신 한국에 태어나서 주식 투기 한번 하지(願生韓國 一投株式) 못하는 억울함 때문이다.

어이, 농담하지 말라고! 허 참, 농담이 아니라니까. 당장 내일이라도 세계무역기구(WTO)가 외국인 차별금지 조항을 들이대며 혜택 개방을 요구할 경우 자칫 우리 정부는 국내 증시에 들어온 전세계 투자자를 세금 털어서 도와주게 생겼다.

정색으로 말하겠다. 주식 투자가 본인의 책임 아래 이뤄지고, 이익이든 손실이든 그것도 자신의 책임이란 사실을 여야는 물론 정부가 모를 리 없을 터다.

그런데도 이런 무리를-억지를-강행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내 기억이 맞는다면 임명 통보 직후-그러니까 취임 직전-진념 부총리는 기자와의 간담에서 인위적인 증시 부양은 절대 없다고 밝혔다.

그때는 문제를 바로 보는 듯했는데, 요즘은 틈만 나면 주가 타령이다. 그 뒤 경제학 공부를 달리한 것인지, 부총리보다 더 높은 어떤 곳의 뜻과 힘이 그의 소신을 꺾은 것인지 그 내막은 나도 모른다. 특히 미국 테러 사태 이후 대통령이 '주식 안 팔기, 주식 사 주기' 얘기를 꺼내고, 이에 따라 증권사 사장단 주도로 '1인 1통장 갖기' 같은 별난 운동을 벌였다.

주식 투자자도 대한민국 국민인 이상 대통령이 관심을 보이는 것이 무슨 잘못은 아니다. 다만 5천만원어치 주식을 굴리는 사람보다 더 시급히 굽어살필 현안은 없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그래서 내년 선거를 노린 포석이라는 따위의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것이리라.

주가 상승이 경제에 미치는 순기능을 난들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정부가 억지로 주가를 띄우고 마구 국민을 증시로 끌어들이는(?) 정책은 그 장기적인 효과도 의문이지만, 자칫 '전국민의 투기화'를 부추길 위험이 크다.

*** 억지 證市부양 신중해야

심판은 심판으로 끝나야지 선수를 겸해서는 안된다. 주식 투자는 까놓고 말해 투기 행위다.

그래서 말인데 "세상에 선량한(innocent) 주식 거래 따위는 없다." 주식 투기에서 돈을 잃고는 모두 선량한 피해자(!)임을 호소하지만, 내막이 정말 그토록 선량하냐는 일침이다. 이것이 내 말이라면 팔매를 던져도 좋지만, 그의 이름이 명문 대학에까지 박힌 미국 대법원 판사 루이스 브랜다이스의 말이니 팔매를 그치고 귀 기울여봄직하다.

정운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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