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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질서를 올바른 길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지금 우리 나라의 정치란 것은 국회가 국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국가의 최고한의사결정의 기관임을 무시해버리려는 악습관을 되풀이하고 있다.
(1)
이러한 버릇은 곧 국회가 국회자신의 본래의 목적과 사명을 부정하는 일이 되는 것이고, 또는 직접국민의 존재를 무시하는 결과가 됨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여당과 야당의 대립은 다시 격화하여 지난 6일 새벽에 일본으로부터 받아들이려는 청구권 자금의 조기 사용에 관한 심의 안을 놓고 열 몇 시간의 논전 끝에 멱살을 잡고 육박전을 하는가 하면 야당의 퇴장으로 공화당만으로 가결, 통과를 보는 사태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되면 국회는 국민의 여러 가지 갈래의 의사를 종합·조정하는 책임을 저버리고 분열과 혼란을 조장하는 것밖에 안 된다. 월남에 군대를 더 파송하는 문제와 아울러 청구권조의문제는 반대와 찬성의 어떤 곡절이 있건 간에 국가의 의사로서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여야할 것이다. 그런데 여당이 다수의 힘으로써 소수의 야당을 억압하며 그를 배제하는 방향으로만 국회를 운영코자 하거나 또 야당이 다수에 대하여 네 멋대로 하라는 식으로 퇴장을 일삼기로 한다면 이는 그 어느 것이나 국민 앞에 무책임한 일이 될 것이다. 이런 일은 정치라기보다도 일종의 폭력의 성질을 가지고 당리당략의 싸움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 될 것이다.
문제는 다수냐, 소수냐에 있는 것이 아니고 국가를 위하여 옳고 그른 것과 이롭고 해로운 것을 국민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성의와 지혜를 다하여 토론할 것에 있는 것이다.
(2)
지금 우리 나라에는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에 깊은 관련을 가지게되는 큰 문젯거리가 있다. 이는 명년 봄의 대통령과 국회의원선거라는 소위 선거바람인 것이다.
선가라면 대개의 나라에서는 혁신과 발전을 기약하는 가장 보람있는 전국민의 의사표시의 기회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이 역시 하나의 세력이 그의 모든 세력을 제압·지배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유일한 기회로 여기고 선거의 승리를 위해서는 가능한 수단방법을 다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종래 저질러온 선거의 죄업에는 정부의 권력을 배경으로 하는 여당이 번번이 정당의 「당무」와 국가의 「국무」란 것을 혼동하여 갖은 음모와 술책으로써 국민을 기만하고 우롱하여왔다. 선거당시는 국민 앞에 공손한 듯이 온갖 힘에 부치는 약속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권세만 잡으면 지배자의 위력을 가지고 국민 앞에 군림하려고 한다. 그러면 지금 선거바람은 어디서 어떻게 불어오고 있느냐. 한 동리의 통과 반에 이르기까지 조직망을 만들고 있다고도 들린다. 그런 조직이란 것은 국민의 선거의 자유를 얽어 매보자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 위에 불어올 더 무서운 것은 「돈 바람」이라고 할 것이다. 소위 선거자금이란 것은 어디서 거두는데 얼마나 써야 족하단 말인가.
국민은 법에 의한 세금을 내는 외에 어떤 누구에게도 법에 근거 없이 금품을 강요당하는 일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선거에는 막대한 선거자금이 어디로 선가 나돌며 몹쓸 바람을 일으킨다. 그런 돈이 어떤 사업가의 「기부」의 이름으로 나온다고 하자. 그러나 결국은 어떤 형태로든지 간접적으로 일반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오는 것은 어김없는 일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 국민이 더 두려워하는 것은 선거자금의 직접·간접의 어떤 부담보다도 그 선거자금 때문에 이사회를 휩쓸고 나갈 부정부패의 악취에 넘치는 회오리바람과 그 병균인 것이다. 그리고 선거자금 뒤에 오가는 이권과 특혜에는 발을 뺄 수 없는 정치의 부패란 것이 따를 것이 아닌가.
(3)
국회와 정부는 큰 깨달음을 가지고 하루바삐 정치의 질서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나갈 것을 생각하여야 한다. 지금 우리주위의 정세란 얼마나 험악한가. 먼저 정부와 여당에 말하고 싶은 것은 소위 「당무」와 「국무」를 혼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 헌법으로 말해도 당무와 국무를 절대 혼동할 수 없는 대통령책임제의 정부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여당인 공화당이 정부에 손을 넣어 정부와 여당이 한 덩어리의 관계를 가지고 정치하자는 일은 잘못된 생각인 것이다. 정당은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에서 정책을 세우고 법을 제정할 것뿐인 것이다. 또 정부의 요원은 삼권분립의 원리에 입각하여 독립된 행정부의 책임을 다할 것뿐인 것이다. 행정부내의 책임도 무겁거든 소위 지구당위원장이란 무엇이냐. 정부의 모든 관리는 대통령을 보좌할 것뿐인 것이다.
그 대신에 대통령은 비록 여당의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국민의 대통령으로서 국가의 정치를 지도해나가는 초연한 책임에서 여·야의 영수들과 자주 절충하여 국회의 원만한 운영에 유감이 없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여당의 일당 국회라느니, 야당의 퇴장이라느니 하는 일도 모두 대통령의 책임에서 있을 수 없도록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여당과 정부가 알아야할 것은 가장 효과 있는 선거운동으로서는 돈을 뿌리지 말고 오직 국가번영의 정책에 충실하는 이상의 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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