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새와 코로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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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 일본사신들은 해마다 한국을 방문한 것으로 되어있다. 물론 국정을 정탐하기 위한 「스파이」들이었다.
그러나 옛날의 그 「007」들은 소음권총이 아니라 진귀한 물건을 갖고 다니면서 「미소」를 뿌렸다. 그 중에서도 그들이 가지고온 공작새가 장안의 인기를 독점했다고 한다. 공작새를 처음 보는 구경꾼의 행렬은 서울에서 한강에까지 뻗쳤고, 모두를 집을 비우고 공작새에 넋을 잃는 바람에, 좀도둑들이 활개를 쳤다. 도둑들은 대낮에도 마음놓고 물건을 털어 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지 5백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공작새 같은 것을 구경하느라고 집안에 도둑을 불러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공작새의 소동」은 5백년전의 슬픈 전설로 끝나버린 것일까? 5대 악의 하나에 끼는 화려한 일제상품의 유혹은 어떤가? 그리고 그 「코로나」소동은 어떤가? 미구에 다가올 전란의 위기도 모르고 공작새의 휘황한 날개에만 정신을 팔았던 선조 시대의 이야기와 얼마만한 거리가 있을까?
비록 성질은 다를 망정 「코로나」의 소동은 옛날의 공작새 못지 않게 백성들의 마음을 어수선하게 만들고 있다. 이번엔 또 자동차제조업자도 아닌 의암수전에 「코로나」승용차의 5백80대 분의 부속품수입을 허가, 면세특혜를 적용하는 안건이 경제각료회의에 붙여질 모양이다. 듣건대 내노라하는 야당의원들 가운데서도 「코로나」승용차의 구입을 에워싼 「스캔들」이 떠돈다는 이야기다.
이쯤 되면, 「코로나」승용차에 정신이 팔려 집안에 도둑이 드는 것도 모를 것 같은 눈치다. 「코로나」차의 도입이 옳으냐 그르냐하는 것보다도, 그러한 말썽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이 만만찮을 것 같다. 공작새와 「코로나」-정말 서울 거리에 번쩍거리는 「코로나」가 등장하게되면 구경꾼의 인파가 몰려들 것이다. 어쨌든 「공작새」가 「자동차」로 변한 느낌이니, 과연 발전을 하긴 한 모양이다. 이름부터도 「코로나」-현대적인 감각이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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