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인수 앞두고 너무 조용한 공신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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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정권 인수 작업이 철저히 ‘로 키(low-key)’로 진행되고 있다. 시선을 끌지 않고 차분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다. 떠들썩했던 5년 전 이명박 당선인 시절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2007년 이명박 대선 캠프는 이상득·이재오·정두언 의원 등 각자 자신의 정치적 지분을 갖고 있는 ‘개국공신’들의 연합세력이었다. 이 때문에 대선이 끝나자마자 인수위 구성과 차기 정부 인선 등에서 자기 사람 심기 경쟁이 뜨겁게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인수위 구성을 총괄했던 정두언 의원이 인수위 출범 한 달 만에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에게 밀려나는 권력 암투도 일어났다. 넉 달 뒤 총선을 앞두고 인수위 명함도 남발됐다.

 하지만 지금 박 당선인 주변에선 캠프 핵심일수록 오히려 당선인과 거리를 두려는 기현상이 나타난다. 이학재 후보 비서실장은 임명직을 안 맡겠다며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 안대희 정치개혁특위위원장 등도 일찌감치 캠프에서 짐을 싸서 떠났다. 최경환·유정복 의원, 권영세 전 의원 등 손꼽히는 측근들도 인수위 얘기만 나오면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든다.

 근본적으로 이명박 캠프와 달리 박근혜 캠프는 철저히 박근혜 1인 체제였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24일 “어려서부터 권력의 생리에 익숙한 박 당선인은 중간 보스들이 권력을 등에 업고 자기 지분을 챙기는 행태를 극도로 경계한다”며 “측근일수록 이를 잘 알기 때문에 오해를 사지 않으려면 지금 조심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현재 박 당선인의 인선 작업에 대해선 일부 가신그룹 정도만 돌아가는 사정을 안다.

 인사 속도도 다르다. 2007년엔 이명박 후보 당선 이틀 뒤인 12월 21일부터 캠프 안팎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장 후보로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과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25일엔 인수위원장으로 이 총장이 최종 결정됐고, 26일 22명의 인수위원이 확정되면서 인수위가 가동됐다. 하지만 박 당선인은 25일 비서실장·대변인단을 발표했지만 인수위 구성은 연말께나 마무리 지을 전망이다. 인선 내용에 대한 핵심 관계자들의 ‘귀띔’도 전혀 없다. 당선인의 활동 반경도 차이가 난다. 2007년 이명박 당선인은 12월 24일 강재섭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만나 총선 공천 문제를 논의했고, 28일 재벌총수들과 회동하는 등 의욕적인 행보를 했다.

 반면 박 당선인은 아직까지 의례적인 당선 인사 외엔 이렇다 할 외부 일정을 잡지 않고 있다. 한 측근은 “박 당선인은 첫째 자신이 적극적으로 움직이면 문재인 전 민주통합당 후보를 지지한 48%의 유권자들을 자극할 수 있고, 둘째 인수위가 전면에 나설 경우 자칫 현직 대통령의 권한을 침범할 수 있다고 보고 조용한 정권 인수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김형준(정치학) 명지대 교수는 “5년 전과 달리 같은 보수 진영 내부의 정권교체이기 때문에 조용한 정권 인수 자체는 나쁠 게 없다”면서도 “지나친 비밀주의는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하·손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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