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절벽 앞 베이너 진퇴양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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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존 베이너 하원 의장이 21일(현지시간) 재정절벽 문제에 관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 AP=연합뉴스]

미국 공화당 소속인 존 베이너(63) 하원의장의 학창 시절 별명은 보너(Boner)였다. ‘어처구니없는 큰 실수’쯤으로 번역할 수 있는 말이다. 지난 주말 이후 미 월가와 워싱턴에서 그의 별명이 부쩍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경제채널 CNBC는 “베이너가 ‘재정절벽’ 협상 과정의 최대 약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그대로 노출시키는 실수를 저질렀다”며 “그의 별명대로였다”고 22일(현지시간) 꼬집었다.

 그는 20일 재정절벽 비상계획(플랜B)을 하원 표결에 부치려 했다. 하지만 플랜B에 찬성하는 공화당 의원들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상정을 스스로 취소했다. 애초 플랜B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합의한 내용도 아니었다. 베이너는 11월 대선 이후 오바마와 수차례 협상했다. 하지만 입장 차이가 좀체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궁여지책으로 플랜B를 내놓았다. 고소득층(연간소득 100만 달러 이상)에 세금을 더 물려 3000억 달러(약 324조원)를 더 조달하자는 안이었다.

 베이너가 상정을 취소한 직후 외신들은 월가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재정절벽 협상 과정의 숨겨진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평했다. 베이너·오바마 협상이 타결된다고 해도 재정절벽이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제껏 월가는 두 사람의 협상에만 눈과 귀를 집중시켰다. 두 사람이 증세·재정삭감·경기부양에 합의하면 의회가 자동적으로 추인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클라호마대 론 피터스(정치학) 교수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베이너가 오바마와 합의해도 공화당 보수파가 반발하면 모든 협상이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플랜B 무산으로)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실제 공화당 내에서 베이너의 운신 폭이 크지는 않다. 오바마 재선으로 세금을 무조건 반대하는 티파티 쪽 입김이 줄기는 했다. 하지만 공화당 의원 상당수가 여전히 증세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베이너가 “차에 갇힌 강아지 신세”라고 자조할 정도다. 이제 재정절벽까지 남은 기간은 단 8일이다. 베이너는 주도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을 사실상 포기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이 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쯤 되자 “증세·재정긴축·경기부양을 포괄하는 빅딜(Big Deal)은 물 건너갔다”는 관측이 대두된다. 오바마도 스몰딜(Small Deal)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연소득 25만 달러 이하 사람들에게 감세 혜택을 연장하고 연방정부 부채 한도를 한시적으로 높이자”고 제안했다. 이 안을 베이너가 받아들이면 “하와이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중단하고 돌아와 합의안에 서명하겠다”고 했다.

미국 재정절벽 협상 일지 (단위 : 달러)

▶11월 29일 오바마, 대선 이후 첫 협상안 제시
-증세 1조5500억, 경기부양 4250억 등

▶12월 3일 베이너, 공화당안 제안
-증세 8500억, 복지 삭감 1조500억 등

▶12월 12일 오바마 1차 수정안 내놔
-증세 1조4000억, 경기부양 4250억 등

▶12월 15일 베이너 ‘2조 달러 패키지’ 제시
-증세 1조, 복지 삭감 1조

▶12월 17일 오바마, 2차 수정안 발표
-증세 1조2000억, 복지 삭감 7250억 등

▶12월 18일 베이너 플랜B 제시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로 3000억 조달

▶12월 20일 베이너 플랜B 하원 상정 포기
-공화당 내부 지지 확보에 실패

[자료 : 톰슨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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