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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 (217) 대통령제와 총리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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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유지혜 기자

2012년은 글로벌 권력 교체의 해라고 할 만합니다. 우리나라 대선을 비롯해 3월에는 러시아, 4~5월에는 프랑스, 11월에는 미국에서 새로 대통령을 선출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나라에서 대통령이 ‘넘버 원’의 권력을 지니는 것은 아닙니다. 독일처럼 총리가 국가 정상 역할을 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국가 권력을 어떻게, 누가 쥐게 되는지 각국의 정치 체제와 역사적 배경을 살펴봤습니다.

대통령과 총리에 대해 이해하려면 우선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라는 정치 체제의 특성과 기원부터 살펴봐야 한다. 입법·사법·행정권은 민주주의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 요소인데, 이 가운데 입법부와 행정부가 어떤 식의 관계인지에 따라 정부 형태를 구분할 수 있다.

 대통령제는 의회로부터 독립한 대통령이 행정권을 행사하는 정부 형태다. 엄격한 권력분립주의에 입각해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뽑는다. 이런 선출 방식은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구분하는 가장 뚜렷한 특징이기도 하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은 국가 원수이자 행정부의 수장으로서 막대한 권한을 갖는다. 대통령과 총리가 함께 있는 나라들도 있다. 이들 중 상당수 국가에서는 대통령이 외교, 총리가 내치를 맡는 식으로 역할을 분담한다. 또 대통령이 의회의 신임을 얻는 사람을 총리로 지명하는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의회 다수파가 대통령과 다른 정당이라면, 대통령과 총리의 소속 정당이 다를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과거 세 차례 그런 적이 있었다.

1787년 미국 필라델피아 제헌의회에서 연합국가 대표들이 헌법안에 서명하는 모습을 담은 유화. 이 자리에서 마련된 미국의 헌법은 연방제를 표방했고, 강력한 리더십을 요구하는 대통령제의 효시가 됐다.

 대통령제의 기원은 미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1776년 독립선언문을 공식 채택한 미 13개 주는 서로 정치적 독립국가로 인정했지만, 영국에 맞서 긴밀하게 협조할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이에 이들은 대륙회의 등 협력체를 구성하고, 최초의 헌법 격인 연합규약에 따라 연합체제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1783년 파리조약으로 미국의 완전한 독립이 인정됐지만, 혁명은 아직 미완이나 마찬가지였다. 대외적으로는 여전히 영국·스페인 등과의 분쟁이 해결되지 않았고, 대내적으로는 경제 공황에 시달렸다. 분리운동주의자들도 기승을 부렸다. 연합체의 무능함에 대한 불만이 하늘을 찔렀고, 강력한 중앙정부와 지도자의 필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런 배경에서 1787년 필라델피아 회의가 소집됐다. 이른바 필라델피아 제헌의회다. 이 자리에서 연합 국가 12곳의 대표 55명이 미국 헌법을 제정했다. 영국 식민지를 겪은 이들은 처음부터 국왕에게 전권을 부여하는 군주제를 택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연합체의 이익을 대변할 군주와 같은 강력한 리더십은 필요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대통령제였다.

 이들이 제정한 연방제를 기초로 하는 헌법은 1788년 뉴햄프셔가 아홉 번째로 비준하면서 비로소 발효됐다. 이에 따라 이듬해 연방의회가 구성됐고, 같은 해 조지 워싱턴을 초대 대통령으로 하는 정부가 구성됐다. 영웅이면서도 종전 뒤 공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던 워싱턴은 제헌의회 초기부터 대표들이 대통령감으로 염두에 둔 인물이었다.

 의원내각제는 내각, 즉 정부의 구성과 존속 여부를 의회의 신임으로 결정하는 체제다. 다른 말로 내각책임제, 의회정부제라고도 한다. 이는 군주국이 민주국가가 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제도로 보는 시각이 많다. 왕실과 의회의 힘겨루기 끝에 군주가 형식상 국가원수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행정권은 의회에 양보한 나라들이 상당수다. 이런 나라에서는 보통 의회에서 총리를 뽑고, 총리가 내각의 장으로서 활동한다. 총리는 통상 선거로 국회 의석 다수를 차지한 정당 대표가 선출된다. 유권자는 의원을 선출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총리 선출에 영향을 끼치는 셈이다.

1688년 영국 국왕 제임스 2세를 몰아내기 위해 그의 장녀 메리와 남편인 네덜란드 총독 오렌지 공이 군함을 이끌고 영국 토베이로 향하는 모습을 담은 작품. 이들은 런던에 무혈 입성하는 ‘명예혁명’에 성공했고, 의회 권한 강화를 골자로 하는 권리선언을 승인했다.

 의원내각제의 기원은 17~18세기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1688년 있었던 ‘명예혁명’을 빼놓고 의회민주주의를 이야기할 수 없다. 1685년 왕위에 오른 제임스 2세는 가톨릭 교도로, 이전의 원칙과 관행을 무시하고 가톨릭 교도를 문무 관리로 중용하며 전제정치를 펼쳐 국민의 반감을 샀다. 이에 의회 양대 정당인 토리당과 휘그당 대표들이 협의 끝에 프로테스탄트교도인 장녀 메리와 남편인 네덜란드 총독 오렌지 공을 끌어들였다. 병사들을 이끌고 영국으로 돌아온 이들은 제임스 2세가 도피하면서 단숨에 런던에 무혈 입성했다. 이후 의회는 ‘신민의 권리와 자유’를 선언한 권리선언을 제출해 승인받았다. 의회에서의 언론 자유 및 선거의 자유 보장도 명시됐다. 영국의 전제정치가 종지부를 찍고, 의회정치가 시작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1714년 하노버 왕조의 조지 1세가 즉위했는데, 하노버는 독일에 뿌리를 둔 왕가였다. 원칙적으로 각의를 주재하고 내각을 선임하는 권한은 그에게 있었지만, 영어를 못하는 그로서는 이런 권리조차 고역일 수밖에 없었다. 서서히 힘의 균형은 의회로 넘어갔다. 이는 민주화 추세와도 맞물려 결국 로버트 월풀 경이 조지 1세의 신임에 따라 각의를 주재하게 됐다. 그가 바로 사실상 영국 최초의 총리다. ‘군주는 군림하지만 통치하지 않는다’는 입헌군주제 원칙도 이때 확립됐다. 1780년대에는 의회의 내각 불신임과 내각의 의회 해산이 반복되면서 연대 책임과 균형 기능이 강화됐다. 1832년 선거법 개정 이후 의회가 총리를 결정하고, 내각을 배출하게 됐다. 

미국 대통령 선출은 간접선거 … 영국은 하원 다수당 지도자가 총리

왼쪽부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민주주의 국가의 정부 체제를 크게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로 나눌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 정상을 선출하는 방법과 그 권한은 국가마다 차이가 난다.

 ●미국 미국의 대통령은 국가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으로 막강한 권력을 지닌다. 의회가 제출한 법안에 대한 거부권도 지닌다.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을 거부하면 법률로서 효력을 지니지 못한다. 이럴 경우 의회에서 3분의 2 이상이 동의해야 거부권을 뒤집을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이기도 하다. 전쟁을 선포할 권한은 헌법상 의회에 있지만, 군을 지휘하고 전략을 짜는 것은 대통령 몫이다. 더불어 국무부·국방부를 통해 외교 정책도 관할한다. 상원의 동의를 받긴 해야 하지만 각료와 대사 등을 임명하는 권한도 대통령에게 있다. 대법관과 항소법원 판사 등 연방 판사 추천권도 있다.

 미국의 대통령은 간접선거로 선출된다. 우선 전당대회를 통해 각 당의 정·부통령 후보가 결정되면 각 주에 배정된 수의 선거인단을 선출하게 된다. 미국민이 뽑는 것은 사실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을 뽑을 선거인단’이다. 많은 선거인단을 확보하는 후보가 승리하는데, 네브래스카와 메인을 제외한 48개 주에서는 승자독식제를 선택하고 있다. 0.1%라도 많은 표를 얻는 후보가 그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을 모두 획득하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은 4년 임기로, 한 차례 연임할 수 있다.

 ●영국 총리가 행정부의 수반이다. 하원 다수당의 추천을 받아 왕가에서 총리를 임명하는 절차를 거친다. 보통 하원 다수당 지도자가 총리가 된다. 영국의 국가원수는 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지만, 행정권 등 실질적 권한을 갖고 있지는 않다. 군에 대한 상징적 통수권은 왕실에 있으나 헌법적 관행에 의해 전쟁 개시나 실질적 군 통솔권은 총리에게 있다. 장관 선임권과 해임권, 의회 해산권도 갖고 있다. 내각 전체가 총리가 속한 한 정당 출신 의원들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따라 영국의 총리와 내각은 왕실과 의회·정당·유권자들에게 정책과 행동에 대한 공동 책임을 진다.

 총리는 업무 전반을 국왕에게 보고한다. 매주 접견하는데, 이때 국왕이 할 수 있는 것은 경고나 격려 등으로 제한돼 있다. 하원 내 다수당의 지도자로서는 매주 정기적으로 하원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할 의무가 있다.

 ●독일 독일에서는 총리가 행정 수반이자 정치적 지도자다. 총리만이 내각 구성권을 지니며, 연방정부의 기본 정책 노선을 결정한다. 연방각료 임면 제청권도 갖고 있다. 총리는 대통령의 제청으로 4년마다 새로 선출되는 연방하원에서 재적 과반수의 득표로 선출된다.

 이 제도는 1867년 북독일연맹에서 기원했다. 프로이센의 수상이었던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1866년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중북부 독일 국가를 북독일연맹으로 묶고, 1871년 프랑스를 꺾은 뒤 남부 4개국을 더 합쳐 독일제국을 만들었다. 1949년 서독 헌법에서 총리에게 중앙행정부 수장으로서의 내치 권한과 더 많은 독립성을 부여했다.

 반면 독일의 대통령은 상징적인 국가원수로서 국제조약 체결, 연방 공무원 임면권 등 극히 제한적인 권한만 지닌다. 특히 국정에는 간접적인 영향력만 행사한다. 독일 대통령은 연방 총회에서 표결로 선출된다. 연방총회는 하원의원들 및 이와 동수인 16개 주의회 대표들로 구성돼 있다. 대통령 임기는 5년으로 한 차례에 한해 연임이 가능하다.

 ●러시아 러시아의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내각 임면권·법률안 서명 및 공포권·국회 해산권·군 통수권 등을 행사할 수 있다. 국민이 직접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한다. 원래 대통령 임기는 4년이었지만, 2008년 개헌을 통해 6년으로 늘어났다. 헌법상 3기 연임만 금지된다. 내각을 이끄는 총리는 러시아의 제2 권력자로 대통령이 하원의 동의를 받아 임명한다. 러시아 정치의 중심은 대통령이기 때문에 총리의 권한도 사실상 대통령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하지만 2008~2012년 블라디미르 푸틴 현 대통령이 총리직을 맡았을 때는 현 총리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대통령보다 더 큰 권한을 행사하는 특수한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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