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으로 부익부 빈익빈… “남자는 계약만 해도 감지덕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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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호 19면

지난 4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롯데마트 여자오픈에서 아마추어 신분으로 우승한 김효주(17)는 10월 프로 전향과 동시에 돈방석에 앉았다. 롯데그룹과 연 5억원씩 2년간 10억원, 인센티브와 훈련 경비 등을 따로 받는 새내기로는 파격적인 대우였다.

이상 기류 감도는 골프 스토브 리그

프로에 갓 데뷔하는 김효주가 대형 계약을 이끌어내자 스폰서 시장이 들썩였다. 프로들 사이에선 김효주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나 인기·유망 선수를 스카웃하는 이번 ‘스토브(stove)리그’에서 김효주보다 나은 대우를 받을 인물은 많지 않아 보인다. 유소연(22·한화)·양제윤(20·LIG)·양수진(21)·김자영(21·이상 넵스) 등 대어급 선수가 넘쳐나지만 경기 불황이 문제다. 스폰서들은 선수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만 해도 여자 프로들은 어렵지 않게 후원사를 구했다. 기업들이 VIP 마케팅, 프로암 대회 등을 위해 여자 선수들과의 계약을 선호했다. 여자 선수들은 투어 시드만 있어도 5000만원 이상의 계약금을 받을 수 있었다. 상금랭킹 20위권 선수는 1억원 안팎에 계약했고, 톱 랭커들은 부르는 게 값이었다.

그러나 올해 분위기는 상당히 달라졌다. 경기 불황 여파로 스폰서 시장이 축소돼 기업 예산이 줄었기 때문이다. 스폰서들은 그만큼 지갑을 여는데 신중해졌다.
스타급 선수들의 상황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기업들이 중·하위권 선수 여러 명을 후원하는 것보다 확실한 선수 하나를 지원하는 전략을 쓰기 때문에 스타들의 몸값은 어느 정도 맞춰지고 있다. 선택권을 가진 톱랭커들은 더 나은 조건을 고를수 있게 됐다. 양수진·유소연·양제윤·김자영 등은 신중하게 스폰서를 고르고 있다.

루키들의 상황도 나쁘지 않다. 잘 발굴한 유망주가 스타가 되는 과정에서 기업의 홍보효과가 커지기 때문에 루키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롯데그룹이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며 김효주를 잡은 이유도 그래서다. 지난 10월 초 세계아마추어팀선수권에서 김효주와 함께 단체전 우승을 합작한 백규정(17)과 김민선(17)도 최근 프로로 전향하면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반면에 상금랭킹 20~30위권 선수들은 갈 곳이 마땅치 않다. 우승 경력이 있는 선수들은 보통 1억5000만원 이상을 요구하지만, 기업들은 후원액을 1억원 이하로 잡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2012년 시즌 KLPGA 투어에서 1승을 기록한 선수가 14명이나 된다. 우승을 해본 선수가 너무 많다 보니 기업이 이들에 대해 느끼는 매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며 “서로 눈높이 차이가 너무 크다. 올해는 계약하지 못하는 프로가 많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위권 시드 선수들의 형편은 더 어려워질 것 같다. 1~2년 전에는 이들도 그리 어렵지 않게 스폰서를 찾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경기 불황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상위권 선수들에게 스폰서가 몰리고 하위권 선수들은 갈 곳이 없어지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될 전망이다.

남자 골프계는 더 춥다. 올해 계약이 끝나는 김대섭(31·아리지골프장)을 비롯해 이인우(40·현대스위스), 이승호(26·에쓰오일), 백주엽(25·캘러웨이) 등이 시장에 나왔지만 우리투자증권과의 계약을 앞두고 있는 김대섭을 제외하고는 스폰서를 구한 선수가 없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남자 프로들의 경우 톱 랭커가 아니면 스폰서 시장에서 이름이 오르내리기조차 힘들다. 스폰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이기 때문에 계약만 하면 감사하다는 입장”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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