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더 좋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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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얘기가 자꾸만 삼류 딴따라 식으로 번져서 안됐지만, 역시 여자가 해야 하는 것-「버스」차장 말이다. 「버스」업자들이 여차장을 머슴애들로 갈아치우겠다고 공언했을 때, 무슨 꿍꿍이 속일까 하고 생각했다. 아닌게 아니라 끔찍한 꿍꿍이속이 있는 모양이다. 차장들을 어디다가 몰아 넣어놓고 모진 학대를 하고, 미처 다 굵지도 않은 가냘픈 손가락 뼈 사이에 연필을 꽂아놓고 왕년의 고등계식 고문까지 해서 견디다 못한 아이들이 집단탈주를 하는 소동이 났다. 아무리 냉혈적인 업자인들 전연 무고한 소녀들을 그렇게까지 학대 할리야 있겠느냐고 오히려 업자 쪽을 동정한 시민들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침저녁으로 콩나물시루 속에서 차장들 등쌀에 시달리고 보면, 여차장이란 존재가 여성미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장들이 천하에 공개한 진정내용을 보면 차장 쪽에 백번 잘못이 있었다 하더라도, 업자들이 자행한 만행은 나라의 헌법과 인륜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는 확신을 우리 마음에 심의 준다. 하루에 근 20시간씩 부려먹고 기본급료 천원이라는 대접이 잔혹한 수작인 건 물론이지만 군대식 합숙이며 사신의 개봉, 검열이며 이르러서는, 우리가 사는 고장이 민주대한의 서울이 아니라 「디킨즈」가 그린 백년 전 「런던」의 암흑가가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켜 준다. 구빈원과 악한이 경영하는 소매치기 훈련소에 두루 끌려 다니면서 모진 목숨을 이어간 「올리버·트위스트」소년의 삶보다 우리 여차장들의 삶이 더욱 참혹한 이유는 이들이 받는 학대가 고도로 「조직화」하여 있기 때문이다.
여자를 남자로 갈아치우겠다는 이유가 남자가 학대를 이겨내는 지구력이 여자의 그것보다 크다고 판단한 것이면 천만의 말씀. 섣불리 사내아이들을 데려다가 종래식 학대를 계속하다간 업자가 봉변하기 쉽다.
차장 없이 운전사 혼자 차도 몰고, 손님도 접대하는 것이 제일 좋다. 그러나 이것은 먼 훗날 얘기-어차피 차장이 있어야 한다면 여자가 더 좋다. 인간대접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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