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인 첫 과제는 복지 늘리며 곳간 지킬 묘수 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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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워도 너무 어렵다.”

 이승훈 서울대 명예교수의 경기 진단이다. 선거가 끝난 자리에 남은 경제 현실이 그만큼 엄혹하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대외 여건이 좋지 않다. 미국 경제에 대한 기대감이 살아났으나, 유럽 경제는 여전히 바닥이다. ‘윤전기로 돈을 찍어내겠다’는 아베 신조 총재가 이끄는 일본 자민당의 총선 승리로 ‘아베 리스크’까지 겹쳤다. 엔화 약세는 곧 원화 강세이며,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의 위기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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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경제인연합회는 “위기 극복을 위한 대통령 당선인의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중산층을 확대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당선인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다. 당장 내년 초가 문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 상반기 성장률을 2.2%로 전망한다. 올해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얘기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년 초 경제 관리에 실패하면 당선인이 애초 계획한 정책을 제대로 실행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초에는 카드채 사태가, 이명박 정부 초에는 광우병 사태와 세계 금융위기가 경제 운용의 발목을 잡았다.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는 “모든 걸 다할 수는 없다”며 “거시 정책에선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장 선택해야 할 문제는 겹겹이다. 내년 초 재정 지출 확대 여부가 첫 과제다. 현 정부는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지출 확대에 소극적이었다. 복지 지출 확대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재정 지출을 확대할 경우 곳간 관리는 어떻게 할지도 묘수가 필요한 숙제다.

정권 교체기에 기업의 불안을 덜어 줄 확실한 기준의 설정도 중요하다. 삼성은 금산 분리, 현대차는 순환 출자, 롯데·신세계는 유통 규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경련은 “경제계는 동반성장과 사회공헌에 앞장서겠다”며 “당선인은 기업이 경제 활성화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1000조원에 육박하고 있는 가계부채 부담을 덜어주는 대책도 급하다. 퍼주기는 쉽지만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하고, 금융사 책임을 어디까지 물을 것인지는 쉽지 않은 과제다. 가계부채는 곧 부동산과 건설업의 문제이기도 하다. 집값 하락 폭이 더 커지거나 거래가 살아나지 않으면 자산 가치 하락→소비 축소→경기 침체의 악순환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상장 건설사 10곳 중 6곳은 영업이익으로 대출 이자도 못 갚는 처지다.

최삼규 대한건설협회 회장은 “취득세 감면 시한 연장, 양도세 중과 폐지 등 거래 활성화 조치가 시급하다”며 “건설업에 서민 일자리가 많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잠복한 위기의 뇌관은 금융이다. 자산운용·증권·보험사에선 이미 앓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돈이 돌지 않으면서 22개 증권사(3월 결산법인)의 상반기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35% 줄었다. 보험사는 저금리로 인해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다. 은행도 이대로 가면 수익성이 급감할 것이란 금융감독원의 경고가 나와 있는 상황이다.

한 은행장은 “은행·증권·보험이 동시에 어려운 상황은 외환위기 후 처음”이라며 “저금리·저성장으로 인해 장기 불황에 빠졌던 90년대 일본을 닮아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복지 지출 확대에 따른 증세와 비과세·감면 축소도 하려면 빨리 해야 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추진력이 가장 왕성할 때인 집권 첫해에 세원 확충을 못한다면 정권 내내 세원 확충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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