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 이경수 파동, 순리로 풀자

중앙일보

입력

이경수(한양대4) 때문에 배구계가 시끄럽다.

이경수는 당대 최고의 스파이커라는 신진식과 김세진(이상 삼성화재)의 장점만을 섞어놓은 듯한 검증된 예비스타. 우승의 `보증수표'를 잡기 위해 현대캐피탈과 LG화재는 드래프트 협약을 깼고,드래프트 지명 1순위로서 이경수 자동 확보가 유력한 대한항공은 팀 해체 불사를 밝히고 나섰다.

가뜩이나 미국의 테러사태로 회사 사정이 나빠진 대한항공이 정말 팀을 없애버린다면 실업팀은 달랑 3개로 줄어 한국배구의 명맥이 끊어질 게 불 보듯 뻔하다.

이처럼 상황이 심각하지만 이경수란 `특상품'을 지닌 한양대측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들어 "자유계약을 통해 원하는 팀에 적정한 돈을 받고 갈 수 없다면 유니폼을 벗겠다"며 배수의 진을 친 채 맞서고 있다.

한대측은 특히 현대와 LG가 자신의 입장을 거들어주고 있는 데다 일부 언론까지약속 위반에 정당성을 부여해줌으로써 천군만마를 얻은 듯 기세가 등등하다.

더구나 한대 출신들이 요직을 점한 배구협회도 드래프트 폐지로 기운 채 눈치만살피고 있어 현대여자팀의 해체 위기 속에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사실 이경수측의 입장도 들어보면 딱하다.

기량이 엇비슷한 신진식이 삼성으로 갈 때 15억원 이상의 거금을 챙겼는데 지금드래프트를 하면 받을 돈이 이것저것 빼면 3억원에 불과해 억울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럴 듯한 명분을 내걸고 이경수를 미끼로 한 `금전주의'가 스포츠정신인 원칙을 깨트리고 마치 진리인양 활개를 치는 데 있다.

대학측은 "자유계약이 되면 실업팀들이 돈을 풀고 이는 곧 배구 활성화로 이어진다"는 논리를 펴고 있지만 이경수를 뺀 나머지 선수들은 추악한 싸움에 들러리조차 되지 못하는 게 배구계의 현실이다.

모든 일의 중재자이자 최종 결정권자인 배구협회는 이제라도 중심을 되찾아 양쪽을 만족시킬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를 찾아야 한다.

원칙대로 드래프트를 실시하되 계약금 상한을 없애거나 계약성사가 의무적인 우선협상권을 도입하는 등 선수가 자유경쟁에 버금가는 몸값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배구협회는 연줄과 인정에 얽매여 스스로 문을 닫는 우를 범해서는 결코 안 된다.
(서울=연합뉴스) 김재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