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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혼탁 줄었지만 … 시대정신 담은 비전 경쟁도 실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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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는 산업화·민주화 세력의 대결구도를 띠고 있다. 보수와 진보가 유례없이 총결집해 각 진영을 떠받치고 있다.

 특히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18일 마지막 유세에서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떠올리듯 “다시 한번 ‘잘살아보세’의 신화를 이루겠다”고 한 건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낸 대목이다. 이에 비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팀 자체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며 민주화 세력으로의 정권교체를 주장했다.

 이 같은 엇갈림은 후보 개인의 출신 배경 때문이기도 하다. 박정희의 딸(박근혜)과 노무현의 비서실장(문재인)이라는 배경 자체에 각자의 강점과 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 결과 박 후보는 초반부터 유신 체제 등 과거사 문제로 시달렸고, 문 후보는 노무현 정부 실정의 책임론을 추궁당했다.

 일부에선 산업화·민주화 세력의 양자대결은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명지대 윤종빈(정치학) 교수는 “이번 대선은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대결구도다. 이제 그 세대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 간의 대결은 정치적으로도, 생물학적으로도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라고 했다.

 그 같은 분석엔 ‘안철수 현상’의 효과도 크다. 무소속으로 대선에 나오려다 그만둔 안씨의 지지층이 여전히 남아 있으므로 앞으론 양자 대결보다는 늘 제3의 후보가 일정한 지분을 차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안씨 본인이 다음 대선에 나오든 나오지 않든 중도층이 새 세대의 지도자를 원하는, 이른바 ‘안철수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선거구도가 두 세력의 대결로 짜인 탓인지 두 후보는 유권자의 마음을 파고드는 거대담론이나 시대정신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97년 수평적 정권교체(김대중), 2002년 지역주의 극복(노무현), 2007년 성장(이명박)에 이어 박·문 후보가 내세운 건 경제민주화였지만, 서로 차별화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경기가 눈에 띄게 식어가는 추세여서 대기업을 옥죄는 경제민주화에 불안감을 느끼는 중도보수층도 적잖은 상황이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실패에 대한 반동이 워낙 컸던 탓에 정책대안을 마련하는 데 여야 후보 모두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 고 말했다.

 미래에 대한 비전 제시도 부족했다. 단적인 예가 외교·안보다. 북한의 3차 핵실험을 앞둔 상황에서 우익정권이 들어선 일본, 시진핑(習近平) 지도부로 바뀐 중국, 그리고 미국의 2기 오바마 행정부 등 주변 강대국과의 외교관계를 어떤 방향으로 풀어갈지 구체적인 방안 제시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박 후보는 “주변국과의 신뢰외교”, 문 후보는 “한·미 동맹, 한·중 경제협력 심화” 등 추상적 표현에 그쳤다.

 이런 현상엔 야권의 단일화 논의로 서로 정책대결에 열중할 수 없었다는 분위기 탓도 있다. 이번 대선에서 야권은 이례적인 ‘다단계 단일화’를 이뤘다. 안철수씨는 11월 23일, 심상정 진보정의당 후보는 11월 26일,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는 12월 16일 사퇴했다.

 정책비전이 사라진 자리는 ‘이명박근혜 심판론’과 ‘노무현 심판론’이 메웠다. 품격과 이성을 잃은 막말, 자기만 옳다는 편 가르기는 4·11 총선 때와 다르지 않았다. 막판 한 방을 노린 네거티브도 빠지지 않았다. 92년 초원복집 사건, 97년 김대중 비자금 의혹, 2002년 김대업 병풍(兵風) 의혹, 2007년 BBK 주가조작 사건에 이어 이번엔 국정원 여직원 감금 사건,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발언록 공개 문제가 불거졌다. 다만 과거에 비해 전체 선거판을 뒤흔들 정도의 폭발력은 보이지 못했다.

 이에 비해 돈 선거 문제는 다소 개선된 모습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대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적발한 선거법 위반행위 조치 건수 중 금품·음식물 제공의 경우 총 32건이었다. 17대 대선(95건)에 비해 66% 감소한 규모다.

 지역주의도 과거에 비해 완화됐다는 평가다. 각각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텃밭인 부산·경남(PK), 호남의 민심 흐름이 그렇다. 공표 직전까지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박 후보는 PK에서 60%대, 문 후보는 30% 중후반의 지지율을 보였다. 문 후보 지지율이 2002년 노무현 후보의 부산(29.9%)·경남(27.1%) 지역 득표율을 넘어선 것이다. 문 후보 측은 내심 ‘마(魔)의 40%’ 돌파를 기대하고 있다.

 호남 역시 마찬가지다. 박 후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10%대의 지지율을 얻었다. 2007년 이명박 후보가 정동영 후보에 560만 표 차 압승을 거뒀을 때도 그의 호남 득표율은 8.9%에 불과했다.

양원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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