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3)건축 김병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서울을 비롯한 도시에 나날이 고층 건물이 서고 있다. 왕성한 부동산 투자의 성과다. 거의가 볼품없는「거대한 궤짝들」. 거리의 아늑한 정취는 이 흉물들에 의해 온통 깨뜨려지고 있다. 20세기 최대의 건축가「라이트」의 말대로 우리 나라의 도시는「위생적 빈민굴」이 되어 가는 것이다. 특히 서울의 고아한 모습은 거의 매몰되고 말았다.
신예 건축가 김병현은 시가를 거닐 때면 우울하다.
『큼직한 건물들이 설 때마다 정말 괴롭다. 그 엄청난 크기에 비해 사상이 너무나 빈곤하다. 건물을 사재로만 아는 무지한 건물주, 무책임한 「설계장이」, 이들이 우리 문화를 망쳐놓고 있다』건물은 사재이기 전에 사회적 생활환경이요, 도시는 결정화한 문화자체이다. 사리를 위해 도시를 살벌하게 만들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우리의 선인들은 훌륭했다. 고 건축을 관찰하면 그들의 깊은 예지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건물서로의 유기적 관계, 자연환경과의 아름다운 조화, 건물의 균형은 언제봐도 감명이 새롭다. 『우리의 고궁,「고딕」양식 사원이 지니는 부후의 가치는 인간정신의 위대한 발현이 그 속에 결품 되어있기 때문이다』
선인을 외경하는「제3대 건축가」의 낯빛에는 겸손과 자신이 엇 깔려 있다.『결국「스타일」이 큰 문제다. 지금 우리 나라에는 기호에 의한 건축이 멋대로 되고 있다. 이것은 한심한 풍조다. 기호는 유행가처럼 간사스러운 것이 어서 끊임없이 변한다』 지금 해외에서 물밀 듯이 들어오는 유행에 대해서 정신을 가누지 못하면… 『결과는 뻔하다. 우리의 후손은 철근「콘크리트」의 쓰레기통에서 살게 될 것이다』그래서 그는 전통을 중시한다. 전통을 살린다고 옛날 것을 그대로 흉내내는 사람이 많다. 흉하게 생긴 소위 현대식 건물에 전자모양의 창을 아무데나 남용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는 옛날 것을 답습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 즉 우리민족의 미감과 체질에 맞는 양식을 발굴해 나가는 것이 전통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건축에 있어서 사상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그는「공간을 구성하는 원리」라고 답한다. 이것은 기성품처럼 언제나 이용할 수 있는 그런 공식이 아니다. 그것은 창조작업 과정에서 끊임없이 형성되어 가는 어떤「일관된 것」이다. 환경과 용도에 맞는 크기, 그 내부 공간의 명쾌한 연봉성, 나아가서 건물군의 유기적 질서를 창조해 나가는 것. 이것이 아무렇게나 이루어지겠는가? 비록 오늘날「건축양식의 전형」이라는 것이 소멸했다고 하나, 그렇다고 해서 현대 건축이「카오스」인 것은 아니다. 원리를 추구하지 않고 개인적인 기호에 흐르는 것은「반사회적 행위」라고 그는 주장한다. 『건축은 음악이나 시와 같은 순수예술이 아니라, 사람이 그 속에서 사는 생활공간이므로 재주만 가지고 안 된다. 오랜 체험의 축적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좋은 집을 지을 수 있다』사람이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건축가는 사회 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가서 민중과 항상 밀착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무애 건축연구소」의「에이스」로서 6년간 일해왔다. 「부산 민중역」(착공) 「중앙역 별관」(계획완료) 광화문의「교육회관」(공사 중)등의 설계에 주역을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해온 일에 전혀 만족하지 않는다.
『나의 창작생활은 이제부터다』그는 의욕에 넘쳐 있다. 지진으로 붕괴된 「유고슬라비아」「스코피에」시의 도시계획 국제현상에 일본의 「당게」 「그룹」이 당선했다고 부러워한다.
14명의 전위 건축가가 모여「목구회」라는「그룹」을 만들었다. 각 유명설계 사무소의 주축「맴버」로 구성된 이들은 매달 한번씩 모여 대화한다. 건축문화를 꽃 피우는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 김병현은 한국 건축계의 주역을 이들「제3세대」가 맡을 날이 멀지 않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우리는 민중을 위한 인간적인 건축문화를 건설하고자 한다. 현실의 절박한 요청에 응하는 동시에 후세에 문화적인 가치를 전해 줄 수 있는 건축, 이 어려운 요청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집을 짓는 것이 우리의 꿈이다』-그 꿈이 이루어진다면? 기대해 봄직한 꿈이다 <상>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