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業, 가내 공엽으로 U턴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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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북의 출현은 출판계에 복음인가, 혹은 재앙인가. 『북 비즈니스』가 그리는 미래는 밝다.

전자출판의 등장이 출판가에 '장밋빛 미래' 를 가져올 것으로 그려낸 이 책은 올해 초 출간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특히 50년간 오프라인 도서출판 기획.편집에 종사하며 그 자신이 '살아있는 출판계의 전설' 이 된 저자 제이슨 엡스타인의 화려한 이력은 그 말에 무게를 싣는다.

그리고 그 무게를 배경 삼아 IT혁명의 영향을 진단하고 대처하는 데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했다.

저자가 보는 출판의 미래는 분명 장밋빛이다. 그러나 그 장밋빛은 공룡화된 미국 출판.서점가의 잿빛 현실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하며, 인터넷 신기술은 그 반성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제시되었다는 점에 무엇보다 주목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가치있는 책' 의 출판에 무한한 애정과 자부심을 가진 노(老) 편집자가 미국 출판계에 던지는 '마지막 편집 기획서' 라 할 만하다.

그가 전자출판의 장래를 낙관적으로 보면서도 그 구조는 가내공업의 수준으로 회귀할 것이라고 예견한 것은 출판의 미래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겐 하나의 화두다.

물론 이 책은 우리와 달리 거대 자본이 투입된 대형 출판사와 체인 서점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미국 출판.서점계의 특수성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하지만 '조약돌의 외침' 이라고 표현한 저자의 목소리는 베스트셀러 양산에 몰두하고 있는 우리 출판계에도 주요한 충고로 들리며, 좋은 책을 선별하려는 독자에게 선구안을 제공하는 계기도 마련한다.

반품과 재고, 그리고 임대료 문제로 고민하다 결국 충동구매를 유발하는 가벼운 책을 양산해 낸다고 저자가 비판하는 미국의 모습은 결코 '강 건너 남의 얘기' 가 아니다.

이 책은 회고록 형식을 취하고 있다. 우선 1952년 더블데이 출판사를 시작으로 출판업에 뛰어든 그가 1년만에 양질의 페이퍼백으로 만든 '앵커 북스' 전집을 기획편집하며 일약 미국 출판계의 스타가 되는 과정이 담담하게 묘사된다.

저렴한 양질의 페이퍼백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보는 책 형태의 효시로 평가 받는다. 8년만에 더블데이를 나온 그는 미국 최대 출판사의 하나인 랜덤 하우스에 들어간다.

이후 고급 서평으로 유명한 '뉴욕 북리뷰지(The New York Review of Book) ' 를 성공시키고, 90년대 들어 개발한 '독자를 위한 책 목록(The Reader' s Catalog) ' 은 서적 온라인 판매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런 과정에 랜덤 하우스의 편집장과 부사장, 고문을 역임한 엡스타인이 미국 출판계의 산 증인으로서 '출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라는 부제를 붙여 간추린 '20세기 미국 출판사' 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 대한 우려는 이 회고록을 마냥 과거형으로 만들지 않는다. 과거 인문주의 정신과 미래 인터넷의 장점을 결합하여 현재의 바람직한 출판상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결론은 아무래도 전자출판의 미래에 대한 전망으로 모아진다. "인터넷 혁명은 출판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양하고, 창조적이고, 자율적인 단위의 가내공업이 다시 도래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

왜 가내공업으로 회귀해야 하는가. 저자는 말한다. "도서출판은 본질적으로 가내공업이다. 뜻을 같이 하는 일단의 사람들이 자기들의 재주에 정성을 다하여 저자의 요구와 독자들의 다양한 흥미에 민감하게 대처하는, 분업적이고 필요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하는 개인적인 산업이다. " 이런 특성이 인터넷과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며, 만일 돈이 주목적이라면 출판편집자들은 아마도 다른 직업을 택했을 것이라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대형 출판사에 대한 저자의 관점은 냉소적이다. 이것은 미국 출판계를 움직이는 5대 '출판 왕국' 이 대부분 외국 거대 자본이라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또 소매시장은 소수의 대형 서점 체인에 의해 좌우된다.

모두 효율성만을 중시하는 이들 거대 자본은 고가의 운영비 때문에 빠른 자금회전을 요구하고, 그들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출판사들은 계속 베스트셀러를 공급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당연히 개별 출판사의 기본 자산이자 오래도록 읽혀야 할 가치있는 책들의 목록인 백리스트는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자금회전이란 효용성에 밀려 점차 책의 수명이 짧아지기 때문이고, 수익성만 초점을 맞춘 기획에도 반영되어 고객들의 충동구매를 유발하는 일시적 흥미가 있는 책에만 자금이 지불되기 때문이다.

저자의 관점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모든 문제가 대형 출판에 있다는 지적도 그렇고 출판계의 난제가 저자와 독자가 직접 만나는 전자출판으로 일거에 해소된다는 점도 그렇다.

하지만 저자의 출판에 대한 '따뜻한 시선' 은 그의 낙관이 현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한다.

"월드 와이드 웹(www) 과 경쟁하기 위해서 앞으로의 서점은 물량 지향적 슈퍼마켓과 달라야 한다. 웹 사이트가 할 수 없는 실체적이고 친밀감이 드는 공동사회의 전당이 되어야 한다" 는 저자의 예견은 굳이 서점만에 해당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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