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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동 화재현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이 일대 판자촌은 아파트를 짓다만 3층 콘크리트 뼈대만의 건물 속에 판자와 천막을 이어 지은 집들이어서 출입구가 매우 좁아 빠져 나오기 어려웠다.
불길이 기둥처럼 솟는 가운데서 짐을 꺼내다 옷에 불이 붙어 불끄던 소방호스 세례로 겨우 목숨을 건진 김기석(27)씨의 경우가 있는가 하면 강정남(29)여인은 남편 김완기(30)씨가 리어카를 수리한다고 집을 비운사이에 불소동이 벌어져 4남매 중 봉애(8·여) 판수(6) 판길(4)군 등 3남매를 한꺼번에 잃었다고 가슴을 치며 울부짖고-.
오양임(33)여인은 잠자던 아이들을 깨워 겨우 하나뿐인 2층 통로로 빠져 나오다 미끄러지는 통에 장남 지행배(9·남산국민교 2년) 2남 행수(7) 3남 행인(3)군도 잇달아 실족, 뒤따라 몰려나온 사람들에게 밟혀 죽었다고 대성통곡, 실신상태였다.
이불만 뒤집어쓰고 추위와 놀라움에 정신을 잃고 울기만 하는 어린이들의 아우성-내 가족, 내 아버지, 내 딸들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는 화재현장은 뚜껑없는 주전자, 부서진 책상조각, 국민학교 교과서가 찢어져 뒹구는 참상 그것이었다.
19일 상오 불탄 자리 주변엔 넝마주이와 고물상들의 「리어카」행렬이 산비탈까지 늘어져 있었고 두개의 새끼줄로 둘러쳐진 출입금지된 현장엔 불타 죽은 아이들의 얼굴을 확인하는 가족들의 눈물 얼룩진 모습들뿐이었다. 방학동안 삼촌 집에 놀러왔다 참변을 당한 김이곤(12·남대문국민교 4년)군과 사촌끼리인 김혜선(10·여) 김혜찬(7) 세 형제의 시체를 가마니에 싸매고 김남환(44)씨는 어쩔 줄 모른 채 울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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