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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진보 소설가들도 지지선언 다하는데…"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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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낙청(74) 서울대 명예교수와 문인 이문열(64) 작가. 두 사람은 진보와 보수 진영의 대표적 인물이다. 백 교수는 올 초 '2013년 체제 만들기'란 책으로 진보 쪽의 정권교체 담론을 이끌었다. 그가 야권 원로 20명과 만든 ‘희망 2013, 승리 2012 원탁회의’는 문재인·안철수 단일화에 관여했다. 보수 인사들은 그를 야권 후보 단일화의 기획 세력으로 지목했다. 박근혜 후보 지지를 표명한 김지하 시인은 4일 백 교수를 향해 “한류르네상스의 분출을 막는 쑥부쟁이(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다. ‘깡통 빨갱이’라 하지 않는 것만도 다행으로 알라”고 공격했다.

이문열 작가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동행하고 4대 강 사업을 옹호하는 등 꾸준히 보수의 길을 걸어왔다. 2003년 새누리당 전신 한나라당에서 75일간 공천심사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진보적인 문인들이 문재인 후보 지지를 공공연히 천명하고 캠프에까지 참여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길이다. 이 작가는 “75일간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을 한 후 내가 하는 건 전부 정치가 돼 버렸다”고 말한다. 두 사람에게 2012년 대선을 물었다. 보수와 진보가 대격돌한 이번 선거에서 두 사람의 말은 무거웠다.

이문열 작가를 만난 12일 아침, 북한은 로켓 발사를 강행했다. 이 작가의 창작 공간인 경기도 이천 부악문원을 찾아가자 그는 “하루 종일 북한 로켓을 들여다봤다”고 말했다.

-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나.

“북한이 미사일 쏘는 걸 보면서 확실하게 박 후보를 찍겠다는 결정을 했다. 북한이 로켓을 발사해 북한과 대화할 필요성이 굉장히 강화됐다. 대화는 우파 쪽에서도 해야 한다. 대화선을 끊을 순 없다. 어떻게 대화하느냐가 문제다. 최근 남북대화는 우리가 조공을 갖고 가서 알현하는 고약한 모양새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첫 정상회담에서 북한으로 간 건 물꼬를 트는 입장에선 그럴 수 있다. 북에 몇 억 달러를 줬다는 것도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두 번째에도 우리 대통령이 또 평양으로 갔다.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면 또 그 정당에서 가야 할 텐데 다시 조공과 알현의 형식을 취하는 건 나로선 받아들이기 어렵다. 조공을 받는 쪽도 예를 갖춰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예조차 받지 못했다. 이젠 대화의 형식을 따질 때가 됐다.”

-문재인 후보는 왜 안 되나.

“의욕만 앞섰던 실패한 정권의 2인자였던 사람이 정권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예외적이다. 김영삼ㆍ김대중 전 대통령 때도 그런 경우는 없었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억울하게 죽었으니 내가 한을 풀 수 있도록 해달라는 건 문제가 있다. 그게 어떻게 그 정권의 2인자가 대권을 받는 데 자산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몇십 배 더 받은 사람들은 잘 지내고 있는데 (노 전 대통령은) 그리 시달리다 자살까지 했으니 너무 심하게 몰아댔다는 동정론은 가능하다. 하지만 그 사람이 참 안됐다고 하는 것과 그 사람은 죄 없이 희생당한 순교자라는 건 전혀 다른 얘기다.”

-안철수 전 후보가 아바타라고 했는데, 안 전 후보로의 단일화 가능성은 없었나.

“박근혜 후보 대세론이 너무 오래가니 누군가 불쏘시개가 필요했을 게다. 시너지 효과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거다. 2002년과 같은 모양새다. 다만 그때와 다른 게 있다면 불쏘시개가 누구인지는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정당과 조직이 없는 안철수씨가 불쏘시개가 될 거라고 했지만 문재인씨의 초기 지지율이 10% 정도였고 안철수씨는 시작하면서부터 바로 박근혜 후보를 이겼으니 바꿔치기가 일어날 수 있겠다는 추측도 있었다.”

-대선 후 안 전 후보의 역할은.

“지난 10개월간 정치 학습을 제대로 했으니 지금부터 자기가 만들어갈 거다. 서울시장부터 대통령까지 자기는 불쏘시개만 됐으니 한심한 생각도 들지 않겠나. 하지만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든 안 되든 그 구도 안에 들어가버렸으니 독립적으로 활동하긴 좀 힘들 거다. 신당을 만든다고 해도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오겠나. 차기 대선을 노린다고 해도 그 기회가 돌아갈지 의문이다.”

-지금 이 시점에 필요한 대통령의 자질은.

“지금은 난세다. 여러 자질을 두루 갖춘 지도자가 필요하다. 앞을 내다보는 힘과 어떤 일을 당해 바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결단력과 돌파력, 또 사람들을 잘 끌어 모으고 통합하는 인화력이 필요하다. 청렴성과 도덕성도 있으면 좋지만 우선순위에선 밀린다. 언제부터인지 도덕성을 지도자의 자질 1순위에 놓는 경향이 있다. 새 세대가 구세력을 공격할 때 가장 좋은 게 도덕성이기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위기의 시대에선 실전형의 실력파 지도자가 필요하다.”

-다음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숙제는.

“결국 국민통합이다. 문제는 국민통합을 하자는 목소리가 오히려 분열을 조장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통합을 하자면서 통합할 사람, 안 할 사람으로 그룹을 쪼개는 쪽이 있다. 대표적인 게 통일 논리다. 통일 논리를 말하면서 반통일 세력을 만들고 분열시킨다. 통일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 밑으로 들어가는 복잡한 문제인데,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문제를 단순화하고 있다.”

-한국 정치의 문제는 뭔가.

“관념의 왜곡이 너무 심하다. 인터넷의 문제가 크다. 내가 정치 비슷한 걸 했다면 75일간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 한 것밖에 없다. 상설 기구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후 내가 하는 건 전부 정치가 돼버렸다. 다른 (진보 쪽) 소설가들이 누구 지지한다고 줄 서는 건 뭐라고 안 하더라. 이상한 규정 짓기 문화다. 대학교수들도 보수 쪽에 서면 폴리페서가 되고 문인들도 보수 쪽은 손해를 본다. 백낙청 선생은 폴리페서라고 안 부르고 평생 민주화 투사, 정의의 화신으로 불린다. 보수 진영에 설 때만 정치 행위가 되는 거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 비율은 45대 55 정도다. 그런데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과 표현은 문단에서 보면 1대 9로 진보가 많다. 이들이 보수 진영에 가는 인사들은 보수 꼴통이라고 완전히 박살내고 괴물로 만들어버린다. 소설가 복거일씨나 박홍 신부, 조갑제씨를 모두 괴물로 만들었다. 이 시대의 광장이라고 할 수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선점한 사람들이 혐의자들이다. 광장 점유자들 때문에 진보와 보수가 기괴하게 뒤틀려 있다.”

-보수는 왜 그런 세력이 없을까.

“모두 다 잘나가지고. 허허.”

-김지하 시인이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를 공격했는데.

“김지하 시인이 보수 입장에 선 게 처음엔 의외였는데 기고문을 읽고는 올 사람이 왔구나 싶었다. 기고문에서 열 가지 문제를 지적했는데 그중 7개는 아주 정확한 지적이다. ‘한류 르네상스 가로막는 쑥부쟁이’란 표현은 정확하다. 백 선생의 예술론 기준으로 보면 가수 싸이도 뜰 수 없고 드라마 ‘대장금’도 해외에 진출 못 한다. 낡아빠진 소셜 리얼리즘(사회사실주의)에 사로잡혀 있어서다. 우리 문학의 세계화엔 아주 안 좋은 영향을 미쳤다. 한류에 관한 한 쑥부쟁이도 그런 쑥부쟁이가 없다.”

-2013년 체제는 어때야 하나.

“북한 변수가 가장 큰 문제가 되고 더 많이 북한 변수와 연관을 맺게 될 거다.”

-남북통일은 어떤 식으로 다가올까.

“독일 통일 반년 전에 서독에 간 적이 있다. 서독엔 통일 관련 연구기관이 200개 이상 있었는데 정확한 예측을 못했다. 반년 만에 다시 갔더니 ‘너무 구조적으로 관찰하고 있었다’고 변명하더라. 공산당의 장악력, 경제력 등만 따지고 라이프치히 촛불시위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때 독일에선 ‘한국이 통일을 예측하려면 사람들을 봐야 한다’고 충고하더라. 그 논리에 서면 북한은 아직 좀 먼 느낌이다. 차라리 남한이 더 빨리 무너질지 모르겠다는 느낌이다.”

-왜 그런가.

“우린 국민교육, 민족교육 전혀 안 하고 있다. 국가에 대한 충성도나 군사력도 북한이 남한보다 훨씬 높다. 사실 북한에 대한 우리의 우위란 게 돈 몇 푼 더 있다는 건데 그건 믿을 만한 게 못 된다. 세계사적으로 돈 많은 나라가 전쟁에서 이기는 거 보지 못했다. 스파르타와 아테네, 그리스와 페르시아도 돈으로만 따지면 경쟁이 안 됐지만 전쟁은 다른 문제다. 우리는 지금 북한에 의한 적화통일, 흡수통일을 걱정하면 보수 꼴통이 되는 이상한 사회다. 남한의 흡수통일을 주장하면 반통일 세력이 된다.”

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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