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뻔한데 … 여야 공약, 위기 극복과 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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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간 한국 경제성장률은 이미 3%로 추락했다. 앞으로 5년간 3%의 저성장이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10년간 3% 수준의 저성장을 계속하면 경제의 선순환 구조가 파괴되고 악순환 구조가 생긴다. 다음 정부의 경제정책은 성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강봉균(사진) 전 재정경제부 장관(건전재정포럼 대표)이 쓴소리를 했다. 13일 건전재정포럼 5차 토론회에서다. 강 전 장관은 ‘저성장과 정치적 전환기의 경제정책과 정부의 역할’ 주제 발표를 통해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고 우려했다. 저성장으로 청년 실업과 영세 자영업자의 도산이 많아지면 민간 소비가 줄어들어 다시 저성장의 원인이 된다. 저성장으로 재정수입이 줄고 실업대책비가 늘어나면 국가 부채가 증가하고 이는 공공투자 여력을 갉아먹어 다시 저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강 전 장관은 치유책으로 성장을 거론했다. 그는 “‘빨리 달리는 자전거는 잘 넘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기업이나 국가 경제에도 적용된다”고 했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는 대책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았지만 클린턴 대통령 시절의 고성장 덕분에 재정적자를 대폭 줄일 수 있었다. 성장이 부실 요인을 자연 치유해 고도성장이 경제적 선순환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여야 대선 후보들이 경제정책의 차별성을 크게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다”며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 두 가지로 요약되는 여야 진영의 경제 공약이 당면한 저성장 위기 극복과는 거리가 있다”고 진단했다.

 대선 후의 경제정책도 조언했다. 그는 먼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기초생보자 등 저소득층과 실업자 지원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자리 대책도 재벌 대기업의 신규 채용 확대와 재벌 기업과 협력 관계에 있는 중소기업들의 일자리 확대부터 서둘러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경제민주화를 위한 재벌 개혁도 일자리 창출에 도움되는 것부터 해야 한다”며 “순환출자 해소나 출자총액 규제는 단기적 일자리 창출 효과가 의문이기 때문에 중장기 과제로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경기 부양보다는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쪽으로 경제정책의 틀을 짜야 한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지금은 1~2년 주기의 단기적 불황 국면이 아니라 4~5년이 걸리는 장기적 침체 국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 전 장관은 이를 위해 ▶대졸 청년에게 전문취업훈련을 무료 제공 ▶내국인 확보가 어려운 분야는 외국인 노동자를 과감히 확대하고 일시 취업이 아니라 영주권까지 주는 방식으로 전환 ▶인허가 관청에 계류돼 있는 민간투자사업을 일제 점검하여 신속 처리 등을 제안했다.

 서울과 세종시로 이원화돼 효율성 저하가 우려되는 행정부처 문제에도 해법을 제시했다. 중앙 부처를 모두 세종시로 옮기자는 것이다. 그는 “중앙부처를 세종시로 모두 이전시키고 현재 청와대 중심의 행정 통제 시스템을 총리 중심의 행정 조정 시스템으로 분권화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봉균 전 장관= 경제기획원 차관,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을 거쳐 정보통신부 장관과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열린우리당 간판으로 16대 국회에 들어간 뒤 17, 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지난 9월 전직 경제부총리와 경제부처 장관 등 100여 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한 ‘건전재정포럼’ 창립을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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