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만 건진 한·미 행협|포기하고 양보하고 실리는 미측 「호의」에 맡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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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일 회담과 더불어 한국외교의 2대과제로 등장했던 「미 주둔군 지위에 관한 협정」(소위 한·미 행정협정)이 오는 28일 서울에서 이동원 외무장관과 「브라운」주한 미 대사 사이에 정식조인 된다. 주한미군에 「치외법권」을 인정한 「대전협정」이 체결 된지 꼭 16년만에 주한미군의 법적 지위를 규제할 수 있는 협정이 체결됨으로써 주권국가로서의 체면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전문과 본문31조, 합의의사록 및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기로 된「양해사항」등으로 된 한·미 행협은 오는 17일 소집되는 제54회 임시국회에서 비준동의가 가결된 후 이를 미국정부에 통고한 날부터 90일 후에 발효하게된다. 행협발효와 함께 「대전협정」은 폐기되며, 「대한민국과 통합사령부간의 경제조정에 관한 협정」(소위 「마이어」협정)도 주한 미군에 적용되지 않는다. 정부는 행협의 시행을 앞두고 28개에 달하는 국내법정비작업에 착수했으며 이에 따른 예산조처도 마련했다.
정식조인을 앞두고 행협이 체결되기까지의 경위와 밝혀진 조문내용을 중심으로 외국의 협정례와 비교, 검토해보기로 한다. <태>

<행정협정이란?>
미국에서 처음시작 된 것으로 행정부가 의회의 비준·동의 없이 다른 나라 정부를 상대로 체결한 협정을 말한다.
과거 미국정부가 외국에 주둔하는 미국군대의 지위를 규정하는 협정을 체결할 때 까다로운 의회의 비준절차를 거치지 않고 행정협정(EXECUTIVE·AGREEMENT)의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주둔군지위협정」을 행정협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제2차 대전 후 미군이 해외 각 국에 주둔함에 따라 미군을 받아들이는 접수국과의 주둔군인·군속 및 군 요원의 특권·면제 또는 이용하는 시설에 관해 규제하기 위해 1951년 6월19일 「런던] 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 당사국들과 처음으로 NATO협정을 체결했다.
그 후 미국은 60년1월19일 미·일 협정, 63년5월9일 미·호 협정 등 현재 40여 개국과 주둔군 지위협정을 체결하고있다.

<교섭경위>
6·25동란이 폭발하자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면서 50년7월12일 대전에서 각서교환형식으로 미국과 「대전협정」을 체결했다.
전쟁상태란 단순한 이유 때문에 이 협정에서 한국은「잠정적으로 주한미군에 배타적 재판관할권을 미 군법회의에 부여」하고 말았다.
휴전이 되자 당시 「덜레스」미 국무장관이 방한, 53년8월7일 이승만·「덜레스」공동성명에서 행협 체결 교섭을 약속 받았다. 그러나 미 측이 한국의 준 전시상태, 국내사법체계의 미비 등을 이유로 들어 계속 지연작전을 써왔다. 62년9월20일에 겨우 대전협정을 고치기 위한 한·미 실무자회의가 첫 막을 올렸다.
실무자 회의는 계속 열렸으나 교섭은 여전히 소걸음. 64년3월17일 이동원 외무장관이 미국을 방문하고 「워싱턴」에서 발표된 「이·러스크」공동성명에서 한·미 행협 조기체결을 약속, 교섭에 새 기틀을 마련했다. 뒤이어 박 대통령이 방미 시 「박·존슨」공동성명에서 행협의 핵심문제인 형사재판관할권, 민사청구권, 노무조항 등에 원칙적인 합의에 도달함으로써 사실상 행협교섭에 큰 매듭을 지었으며 이 여세를 몰아 양국실무자들이 무려 81차의 「마라톤」회의를 강행한 끝에 마침내 결실을 가져오게 되었다.

<형사재판관할권>
한국은 국제관례에 따라 미 측이 관할권포기를 요청할 때는 제1차 적으로 미 측에 이를 포기하게 되어있다. 서독보충형도 이와 꼭 같다.
그러나 한국과 서독은 관할권을「일단 파유국(미국)에 포기하되」그 후 특수한 이유로 관할권의 행사가 「불가피」하다고 인정할 때는 포기를 「철회」할 수 있다. 이때 서독은 철회요청을 「외교경로」를 통해 협의하도록 되어있는 반면 한국은 불가피하다고 인정할 경우 포기의 철회는 「최종적이며 확정적」이라고 규정, 서독보다 약간 앞선 감을 주고있다.
이에 대한 각국 협정의 선례를 보면 ①「나토」협정, 미·일 협정, 미·호 협정-포기 요청이 있을 경우『특히 중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러한 요청에 대하여 호의 적인「고려」를 하게 되어있다』 ②미·희 협정-『중대하다고 인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미군당국에 관할권을 「포기하게」되어있다』

<민사청구권>
미군이 한국 내서 공무 또는 비 공무 중 인명·재산 등에 손해를 입혔을 때 그 손해에 대한 배상절차 및 배상한계를 규정하는 청구권의 각국 선례는 다음과 같다.
①미·일·「나토」·미호 협정의 손해배상절차는 공무·비 공무로 구별하고 공무인 경우 다시 그 피해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달라지는데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보상을 받고 있다.
②미국이 주로 약소국가와 체결한 유형으로 통일된 청구권 해결절차는 찾아 볼 수 없다.
미·비 협정-『공무·비 공무의 구별 없이 개인의 재산에 대한 손해는 미국정부가 「공정하고 합리적인」배상을 지불하여야한다』이는 모두가 미국법규 위주로 하는 제도로 접수국이 부당한 손해를 강요당하고있다.
한국의 경우 미군이 공무집행 중 양국정부재산에 손해를 입혔을 때 그 액수가 천4백불 이하는 상호 표기하고 천4백불 이상일 때는 양국이 공동분담 하되 ①미국책임이면 한국이 25%, 미국이 75%씩 각각부담하고 ②공공책임일 때는 양국이 서로 50%씩 나누어 부담하도록 되어있다.
미군의 비 공무 중 한국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피해자가 불만일 때 한국의 민사소송법에 따라 법에 호소할 수 있으나 문제는 그 실효성여부에 달려있다.
전조의 경우 대체로 「나토」, 미·일 협정의 유형을 따라 비교적 무난하게 낙착이 되었으나 「중재인」규정은 과연 양심적인 중재인이 아무런 압력(?)을 받지 않고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하겠다.
민사청구권 조항 중에서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은 「적용시기」이다. ⓛ서울지역은 협정발효 후 6개월 이내에 ②기타지역은 한·미 합동위가 「합의」하는 시기라고 규정하고 있다.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지역이 서울을 제외한 지방이라는 사실과 미군 범죄의 75%가 지방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최악의 경우, 청구권조항이 유명무실화할 가능성이 많다. 더구나 한·미 합동위가 「합의하는 시기」란 미 측이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면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다. 행협 전 조항 중 두드러지게 후퇴한 조항이라는 것이 일반의 평가이다.

<노무조항>
미군이 현재 고용하고 있는 약3만 명의 한국노동자에 대한 모집·고용·급여·해직 등 고용조건과 기타 노무자의 권리 등을 이 조항에서 규정하고있다.
한국은 협정에 의해 노동3법의 규정에 따르게 되어 있으나 『미군의 군사상 필요에 배치되지 않는 한』이란 까다로운 단서가 붙어있다. 미 측이 이 단서를 확대 해석할 때는 한국은 많은 손해를 감수해야한다.
한국은 형사재판관할권을 미 측이 포기를 요청할 경우 제1차 적으로 이를 무조건 포기하는 대신에 노무조항에서 명목상으로나마 「쟁의권」을 획득했다.
그러나 파업권의 행사는 쟁의해결절차가 복잡해서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우선 쟁의는 ①노동청에 회부하여 조정 ②합동위에 넘겨 합동위가 지명하는 특별위에 회부 ③합동위가 해결하며 그 결정은 구속력을 가지도록 되어있으며 쟁의가 합동위에 회부된 후 70일이 지나야 겨우 파업에 돌입할 수 있다. 그러나 70일간의 사전 중재냉각기간은 너무나 길뿐 아니라 파업권행사에 많은 제약을 주고있다.
결론적으로 보면 이번 협정은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협정을 체결한 미·「나토」, 미· 일, 미·호 협정 등보다는 불리한 내용이며 대체로 서독보충형의 유형을 본뜬 셈이다.
특히 ⓛ형사재판관할권을 1차 적으로 미 측에 포기한 점 ②민사청구권에 있어서 적용시기를 지방의 경우 앞으로의 과제로 남긴 점 ③앞으로 설치될 한·미 합동위가 너무나 벅찬 임무를 떠맡고 있다는 사실 등은 우리에게 극히 불리한 점이라고 평하지 않을 수 없다. 중요한 조항 중에는 미 측의 「호의적인 고려」를 바라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타결된 내용은 행협을 체결했다는 자체 즉 주한미군에게 「치외법권」을 인정한 「대전협정」상태를 벗어났다는데 큰 의의가 있으며 「실리면」보다 「명분론」에 치중한 감을 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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