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속셈=동남아 주도권 구축|독전이냐 화평행상이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북평공항 밖의 날씨는 영하5도로 좀 누그러진 것 같았으나 소련공산당 제2인자 「셀레핀」과 어색한 악수를 나누는 이선념의 마음은 영하15도의 「모스크바」 날씨를 뺨칠만큼 차가왔다.
이리하여 90분간 중공에 기착하려던「알렉산드르·셀레핀」은 지난 7일 중공부수상 겸 재상인 이선념과 조무라기 영접단의 냉대에 수정주의적 발작을 일으켜 40분이나 예정을 앞당겨 열광적 환영이 기다리는「하노이」로 걸음을 재촉했던 것이다.
하루3, 4백만불의 「달러」를 꿀꺽 삼키고도 까딱도 않는 월남전에 골치를 앓는 「존슨」 미국대통령의 입체적 평화노력이「피크」 달리고 있는 때가 때인지라 「셀레핀」이 혹시 평화보따리를 호지명에게 안기는 것이 아닌가하는 희망적 관측이 미국일부에서는 고개를 내밀고있었다. 그러나 「정의에 바탕을 둔 반미세력의 최후승리」를 믿는다는 월맹의 사기에 거름을 주는 따위의 「셀레핀」의 반미독설은 이점에 있어서는 모택동의 호전적 「에너지」와 동근이엽 같이도 들려 미국인들의 가슴에 냉수를 끼얹었다.
더욱 「셀레핀」 사절단 일행 가운데 고위 「로키트」 전문가가 끼여있다는 사실은 덮어놓고 「하노이」에 화평압력을 가하려는 데만 그의 목적이 숨어있지 않다는 냄새를 풍긴다. 『소련은 미국과 야합하여 인민들의 혁명의 불길을 끄려하고 있다』 고 쏘아대는 중공과 『사회주의국가들의 대월남공동행동을 방해하고 있다』고 응수하는 소련사이는 단교일보전의 관계에 있음을 간과하지 않는다면 그의 사명이 월남전의 확대에 있지 않다는 자위도 우러나옴직하다. 월남전을 둘러싸고 미·중공의 격돌의 기미가 짙어가고 있는 때를 틈타 진의의 「인민전쟁승리만세식」의 엉뚱한 혁명열에 스스로를 불태우는 중공을 고립시켜 동남아에 굳은 발판을 구축하고 공산권의 「헤게모니」 쟁탈전에서 우세를 견지하는 한편 미국에 대해서도 「에스컬레이션」을 삼가도록 경고하려는 속셈이「셀레핀」의 머릿속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지 모른다. 작년 2월 대중공 관계개선과 화평의 길을 모색하는 임무를 띠고 북평을 거쳐 「하노이」를 방문했던 「코시긴」 소련수상에게는「베트콩」의「플레이쿠」미군기지공격이란 의외의 월맹의 선물 (?) 이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며 그의 두 가지 방문 목적이 실패하고만 꺼림칙한 전례가 있다.
「코시긴」의 방문의 뜻이 월맹을 중공에서 따돌리려는데 있다고 생떼를 쓴 중공의 발악으로 잠시 멎었던 중·소 분쟁의 활화산이 다시 폭발했을 뿐 아니라 「플레이쿠」기지피?에 대한 미군의 보복으로 나타난 북폭개시로 월남전은 「에스컬레이션」의 오솔길을 줄달음쳐왔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에 따라 중·소 논쟁도 월남전에 질세라 「에스컬레이션」경주에 핏발을 세웠다.「베트콩」의 소규모적 준동에서 시작해서 월맹정규군의 지원을 받은「베트콩」과 미군과의 대결로 번졌다가 다시 미·중공의 대결로 질적방향 전환을 거듭한 월남전의 양상은 월맹이 독자적으로 협상을 결정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난 느낌마저 없지 않은 것 같다.
중공의 「자력갱생론적인 원조」만 가지고는 한 달에 1만회나 되는 미군의 폭격세례에 배겨날 수 없기 때문에 소련의 원조에 크게 기대지 않을 수 없는 월맹이긴 하나 중공의 압력과 「베트콩」핵심분자의 옥쇄위육의 틈바구니에서 두 팔을 묶인 감도 없지 않은 듯. 그러고보면 공산이론으로 완전무장한 「셀레핀」이 이번에 뾰족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으며 기껏해야 그의 방문에 실낱같은 희망을 붙이고있는 미국의 폭격중지기간 (10일로 18째에 접어든다) 을 좀더 연장케하고 월맹을 「모스크바」쪽으로 좀더 끌어당기는 자석과 같은 정도의 효과밖에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일부 관측도 무리는 아니다.
「쇼벨」 보고에서도 나타난바와 같이 미·중공대결의 위험성을 짙게하는 월남전에서 미국이 패배를 자인할 때까지 싸운다는 것이 중공· 월맹의 진의라고 한다면 한국전이상의 미군을 투입해서라도 「베트콩」을 때려잡겠다는 미국의 굳은 결의에는 병력증강, 북폭강화가 뒤따를 것이며 그렇게되면 또 한고비의「에스컬레이션」만이 「클로스·업」 될 것 같다. <갑>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