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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공습 '글러벌 미디어'는 미국중심 세계관의 전도사

중앙일보

입력

어쩌면 한국인들 대다수는 이 책을 절반 가까이 이미 읽은 것이나 다름없다. 최근의 미국 테러 대참사는 사실 다른 거창한 설명이나 학문적 분석이 필요 없을 정도로 '글로벌 텔레비전' 의 영향력과 의미를 충분히 알려주지 않았던가.

테러 현장의 생생한 화면이 이국만리의 안방에 실시간으로 스며들자 더 이상 시간과 공간의 일치에 바탕을 둔 부족적(部族的) 사고는 유효하지 않게 됐다.

그곳 사람들의 공포와 정신적 공황상태는 그대로 한국에 전염되고 국내 증시가 동반 하락하며 한국 정부가 비상 대책을 논의하는 상황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것이다.

『글로벌 텔레비전』은 이런 절묘한 시점에 번역.출간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세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또한 이 책은 초국가적 자본이 소유한 복합 미디어 그룹과 미국 광고주의 영향력 등 TV의 산업적 측면만으로 현상을 파악하기는 역부족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산업적 분석은 필요 조건일 뿐 푸코와 하버마스를 아우르는 권력론.담론학 등의 문화적 분석을 결합해야 이 현상을 온전하게 조망할 수 있다는 얘기다.

거창한 제목과 달리 저자는 일단 겸손함을 내비치고 있다. "지구화와 텔레비전의 일반적인 문제들에 관한 하나의 시도" 라고 서문에서 밝혔듯 기왕의 논의를 일목요연하고 짜임새있게 배치하는 데 일차적인 목표를 뒀다.

장마다 친절하게도 요약과 결론이 실려 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특히 "뉴스는 세계를 반영하는 창이 아니라 선택되고 구축된 현실의 표현" 이라는 견해에 따라 분석한 부분은 흥미롭다. 서구 거대 통신사의 손아귀에 세계 뉴스 생산이 놀아나고 있는 결과 이슬람 국가는 대표적인 악역을 맡게 됐다는 것이다.

게다가 글로벌 뉴스의 신기원을 이룩한 CNN의 걸프전 보도는 고성능 무기의 매력과 전쟁의 목적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원유를 둘러싼 이라크와 서구세계의 갈등 등 근본 원인에 대한 해석은 전무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저자는 서구와 제3세계 국가, 또는 비서구권의 정보 격차를 뜻하는 문화제국주의에 동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책의 전반적인 논조는 문화제국주의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 면죄부를 주는 방식은 두 가지다.

첫째는 글로벌 수용자는 기존의 자극-반응 법칙에 따르기보다 그들 나름의 문화적 능력을 적용해 텍스트를 해석하는 능동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글로벌 텔레비전은 현대성을 구성하고 있는 텔레비전의 필연적 경로이며 지구화와 지역화는 서로 적대적 모순관계가 아니라 변증법적 융합과정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한쪽으로 경도됐을 수도 있다" 는 자기 고백을 통해 양해를 구하고 있지만 수용자의 능동성이 미국 주도의 세계관을 투영하는 글로벌 텔레비전을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저항으로 전화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길거리의 10대들은 이미 "아이쿠!" 대신 "웁스!" 라는 영어 의성어를 사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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