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팍팍해진 살림살이에 … 총 저축률 30년 만에 최저 추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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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의 뒷심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투자와 소비의 원천인 저축 여력이 30년 만에 최저치로 추락했다. 소득 정체와 부채 증가로 가계 살림이 빡빡해진 탓이다.

 12일 한국은행과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총 저축률은 3분기 말 현재 30.4%를 기록했다. 1982년 3분기(27.9%) 이래 가장 낮다. 총 저축률은 정부와 가계·기업 등 각 경제주체가 벌어들인 소득에서 세금과 준조세·이자·소비 지출 등을 빼고 남은 돈의 비율이다. 미래를 위해 저축할 수 있는 여윳돈의 규모를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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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 저축률 하락은 경기 영향이 크다. 이 비율은 올림픽 특수와 ‘3저 호황’을 누렸던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 고공비행을 했다. 88년 3분기엔 41.5%로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였다. 그러나 이듬해 38.1%로 내려앉은 뒤 외환위기 직전인 96년 36.5%까지 떨어졌다. 카드대란 발생 직전인 2002년에는 30.5%까지 하락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거졌던 2008년(30.4%) 저점을 찍고 소폭의 오르내림을 반복해 오다 20%대로 미끄러질 상황이 됐다.<그래픽 참조> 고가영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총 저축률 감소는 기업이나 가계의 투자와 소비 재원이 줄어든다는 뜻이어서 미래 성장률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설명했다.

 가계의 저축 여력이 더 쪼그라들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개인저축률은 88년 19.8%에서 지난해 4.3%로 낮아졌다.

개인저축률이 총 저축률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동안 46.2%에서 13.5%로 급락했다. 이에 비해 정부와 기업의 저축률은 떨어지지 않고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키웠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성장률이 떨어지고 낙수효과도 약해져 가계의 몫이 꾸준히 줄어들었다”며 “이는 다시 정부 세입을 줄이고 가계부채를 늘려 내수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가계가 저축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한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가계 살림이 빡빡해진 건 소득이 안 늘고 빚은 많아졌기 때문이다. 연평균 명목가계소득증가율은 80년대 17%, 90년대 11.9%, 2000년대 5.9%로 둔화했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국민들이 체감하는 소득증가 폭은 이보다 훨씬 작다. 3분기 국민처분가능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2.5%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09년 2분기(1.7%)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이에 비해 가계부채는 2004~2010년 연평균 8.8% 증가해 소득증가율을 훨씬 앞질렀다.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성장과 분배를 함께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진성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거시분석실장은 “가계소득이 정체되고 연금 등 준조세 성격의 지출은 계속 늘어나는데 소비를 줄이기도 쉽지 않다”며 “성장으로 파이를 키우되 기업과 가계 간 분배 격차를 줄여 가계의 숨통을 틔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준협 연구위원은 “경제에서 내수가 차지하는 비중을 키워나가면서 수출이 내수로 연결되고 가계 소득과 소비를 늘릴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종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가계저축률을 올리려면 빚을 지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우리 경제에는 빚을 권하는 제도가 많다”며 “빚을 지게 하는 인센티브를 없애고 저축에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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