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넷] 온라인 평론가 협회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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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미국에서는 수많은 영화상이 발표된다. 아카데미상처럼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작품에 영광을 안겨주는 상이 있는가 하면, 골든 래즈베리상처럼 '최악의 영화'를 뽑는 이색적인 상도 있다.

또 LA나 뉴욕 등의 비평가협회도 제각기 상을 준다. 이 상들은 저마다 그 해 개봉 영화들에 대해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시각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크든 작든 영화상이 발표될 때마다 사람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바로 그런 시각들이 자신의 그것과 얼마나 비슷한지, 혹은 얼마나 다른지를 확인하는 데서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6일 그런 재미를 선사하는 또 하나의 영화상이 발표됐다. 미국의 '온라인 영화평론가 협회'(ofcs.rottentomatoes.com)의 2002년 결산이었다. 총 21개 부문에 걸쳐 지난해 개봉작들을 평가했는데, 진지함을 잃지 않으면서 대중과 더 가깝게 호흡하는 온라인 영화평론가들의 시각이 잘 담겨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온라인 영화평론가 협회의 선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결과는 '반지의 제왕:두 개의 탑'의 선전이다. 최우수 작품상은 물론, 감독상(피터 잭슨).시각효과상.편집상.음향상 등을 휩쓸었고, 전체적으로 조화가 잘 이뤄진 영화에 주는 '최고의 앙상블' 부문까지 석권했다.

남우주연상이 '갱스 오브 뉴욕'의 대니얼 데이 루이스에게 돌아간 사실도 흥미로웠다. 주연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아예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남우조연상 후보에 '두 개의 탑'에 등장하는 '디지털 배우' 골룸의 동작과 목소리를 연기한 연극배우 앤디 서키스가 오른 것도 눈길을 끌었다. 서키스는 비록 상을 타진 못했지만 목소리 연기만으로도 후보에 오를 수 있다는 점에서 신선했다.

네티즌의 지지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도 열렬했다. 외국어 영화상과 장편 애니메이션상 부문에 후보로 올라 '아이스 에이지''릴로 앤 스티치'등 할리우드 대형 스튜디오들의 작품을 누르고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은 것.

이렇게 참신하면서 신뢰감을 잃지 않는 결과를 낸 온라인 영화평론가 협회상은 앞으로 더 많은 주목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인터넷과 네티즌이 영화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임은 물론이다.

만약 3월 제75회 아카데미상이 '두 개의 탑'의 손을 올려주는 일까지 발생한다면, 조만간 '아카데미상의 풍향계'로 불리는 골든 글로브에 버금가는 위상을 갖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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