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예산안 거품은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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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도 정부예산(안)은 경제 활성화, 성장잠재력 확충, 사회보장체제의 내실화를 표방하고 있다. 일반회계와 재정융자특별회계의 순증가분을 합한 '재정규모' 는 올해 본예산보다 12.3% 늘어났다.

정부의 예산안은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5%, 물가상승률을 3%로 가정하고 있으며 조세수입은 명목 경제성장률과 같이 8%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단기 경기활성화에 초점

정부예산이 경제성장률보다 무려 4%포인트나 빠른 속도로 늘어나게 돼 있어 팽창예산이라는 평가를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예산을 13개 부문으로 나누어 볼 때 예산증가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낮은 부문은 사회간접자본.주택, 농어촌 지원, 통일.외교, 국방뿐이다.

그나마 농어촌 부문의 예산증가율이 낮은 것은 2001년에 부채경감과 어선 감척 등을 위한 일시적 예산증가가 있었기 때문이고 사회간접자본.주택 부문의 지출은 민자유치를 포함하면 13.3% 늘어나게 돼 있다.

예산증가율이 특히 높은 부문으로는 사회복지(18.6%), 과학기술(15.8%), 공적자금 및 국채이자(14.2%), 교육(11.5%), 인건비(9.9%)등이다.

이와 같이 팽창적인 예산이 단기적으로 경기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경기순환의 관점에서 볼 때 내년도 예산으로 대규모 경기부양을 시도하는 것이 시기적으로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여러가지 국내외적인 요인으로 인해 내년도의 경기변동을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현재로서는 늦어도 내년 하반기부터는 경기가 호전될 것으로 전망해도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정부도 예산편성 과정에서 스스로 내년도 실질경제성장률을 5%로 가정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건실한 성장률이다.

따라서 경기활성화를 위해 내년도 예산을 지나치게 팽창적으로 운용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는 다시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우리의 재정 형편을 보더라도 현 시점에서 대규모 재정확대를 추진하는 것은 설득력이 작다. 내년에 구조조정채권 및 국채에 대해 정부가 지급해야 하는 이자만 해도 10조원에 달한다.

또한 내년에 만기가 도래하는 구조조정채권액이 6조원에 가깝고 2003년에는 무려 22조원에 달하는 채권이 상환돼야 한다.

또한 건강보험의 재정이 위기에 처해 있고 국민연금 등 4대 공적연금도 고질적인 저부담-고급여의 구조적 함정에 빠져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기적인 경기부양에만 집착해 무리한 재정팽창을 도모한다면 재정의 안정성이 치명적으로 훼손되고 경제의 장기적 성장기반이 무너지게 될 위험이 있다.

내년에는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가 있다는 사실도 정부예산의 운용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흔히 그러해 온 것처럼 특정 정당이나 정파에 정치적 이익을 주기 위해 선심성 예산을 편성하거나 실속없는 전시용 사업을 벌이는 일은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경제활성화를 내세우며 경제성 없는 대규모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벌이거나 저축동기와 근로의욕을 약화시키는 소비성 복지예산을 과도하게 확대하는 것은 곤란하다.

*** 선심.전시용 사업 자제를

사회복지부문의 재정지출이 장기적으로 확대돼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실질기준으로 연간 5%의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복지예산이 연간 15.6%씩 확대된다면 설사 사회복지체제의 내실화를 기한다는 좋은 명분이 있다 해도 재정팽창이 과도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교육투자가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명제를 부인하기는 어렵지만 벼락치기 식으로 교사를 충원하고 학교를 세우며 교실을 짓는다면 장기적인 성장기반을 튼튼하게 다지는 성과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럴듯한 명분을 내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발전과 국민복리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예산을 짜는 일이다. 국회의 예산 심의에 기대를 걸어본다.

尹建永(연세대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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