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영의 신중국 경제 대장정] 덩샤오핑 루트 3만리따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국장의 '지령' 은 간단했다.

"중국이 대격변을 치르는 모양인데 한번 보고 오시지요. 그 중심에 덩샤오핑(鄧小平)의 유지(遺志)가 있는 것 같으니 그의 자취를 더듬어 보십시오. "

중국을 다녀오라는 말에는 구미가 동했으나 鄧의 발걸음을 따라가라는 데는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하필이면 鄧이람.

중학 시절 펄 벅의 『대지』 따위를 통해 중국의 빈곤을 읽은 우리 세대는 장이머우(張藝謀)감독의 '붉은 수수밭' 을 그저 영화의 재미로만 감상할 수가 없다.

압제 해방의 역사성이 강박관념처럼 장면마다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그 반압제 투쟁의 연기는 단연 마오쩌둥(毛澤東)이 적격이다. 내심 鄧 루트 대신 毛 루트를 바란 이유가 여기 있었다.

선전(深□)에서 들은 어느 교민의 체험담이다. 전날 무단결근한 중국 직원에게 한국인 상사가 이유를 물었다.

"어제는 왜 안 나왔나?"

"아기를 돌보느라고요. "

"부인은 뭘 하고?"

"아내는 출근했지요. "

이제 이런 얘기는 전설이다. 전설이 현실을 좌우할 수는 없다.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와 광안(廣安)을 잇는 4백㎞의 도로는 鄧의 생가로 가는 길이라는 점에서도 鄧 루트였다. 갓길은 벼를 말리는 농민들이 점령해 2차로 도로는 온통 차와 가축과 사람으로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중앙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기사는 시속 1백㎞ 이상의 곡예운전으로 우리의 일정을 맞춰주었다. 중국 경제는 이렇게 과속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농민들은 그 질주를 무력하게 바라보았다. 차 바퀴에 날리고 으스러지는 낟알들을 오히려 걱정하는 판이었다.

거기에 개혁의 빛과 그늘이 엇갈리고 있었다. 운전기사로 하여금 미친 듯이 달리게 했던 그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노력에 따른 보상이었으리라. 그러나 미구(未久)에 소득은 노력에 비례하지 않고, 자본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죽을 둥 살 둥 달려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고 느낄 때, 그의 좌절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여기 중국 경제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한쪽의 과속, 그럴수록 다른 한쪽에서 느끼는 무력감과 좌절!

그 개혁.개방의 변증법 탐험이 이번 취재의 '깊은 뜻' 이라면 아무래도 그 장본인들인 毛와 鄧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겠다. 개항기 '신사유람단' 의 당황이 이러했을까?

그러나 은근히 믿는 구석도 없지 않으니 중국과 중국어에 익숙한 국제부의 장세정 기자와, 글로 모자라는 부분을 사진으로 채워줄 조용철 차장의 동행이 그것이다.

본사와 제휴한 인민일보(人民日報)의 현지 협조도 기대할 만하다. 그래, 우리의 장정(長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중국 경제의 대장정 아니겠는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