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을미년 정국의 분기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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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 8월15일밤 8시 정일권국무총리는 수행원을 모두 떼어놓은채 반도「호텔」 8백39호로 정구영공화당의장을 방문했다. 정총리를 반갑게 맞은 정의장은 문을 안으로 걸어잠그고 약 1시간30분동안 구수밀의를 했다.
이날은 정국에 회오리바람을 불러일으킨 한·일협정비준동의안이 공화당의원만의 손에 의해 국회본회의에서 통과된 바로 다음날이었다.
정총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일상오 대통령을 방문하여 건의토록하십시다』고 말하자, 정의장도 선뜻 응낙, 『그러면 16일상오 11시 청와대에서 만납시다』고 약속했다. 이 밤중의 은밀한 회합은 바로 박대통령에게 개각을 건의해보자는 「맹약」을 위한 것이었다.
약속대로 16일상오 11시 정총리는 전국무위원의 일괄사표를, 그리고 정의장도 같은 시간에 전당무위원의 일괄사표를 움켜쥐고 청와대로 대통령을 방문, 8개부에 대한 개각을 요구했다. 결과는 어이없는반대, 『현체제대로 밀고나가라』는 박대통령의 뜻을 꺾을 수 없었다. 정총리는 엉거주춤 주저앉았고 정의장은 의장직을 동댕이친채 수덕사로 「휴양]여행-이래서 정부·여당연합군에 의한 개각압력은 싱겁게 막을 내리고 공화당은 영영 집권가의 서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정총리와 정의장은 한·일비준안 국회통과후의 민심수습책이라는 형식적인 명분에는 뜻이 맞았으나 그 속셈은 판연히 다른 동상이몽. 정총리는 개각압력을 통해 입살밥에 모래알같이 여겨지던 모장관을 경질, 각내의 권능을 복돋우자는게 주목적이었고 정의장은 청와대주변의 방계세력을 정리하고 동시에 행정부를 당의 실력권내로 끌어들여 당권을 확립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정의장은 집권후 계속 권외로 밀려나기만 하는 당을 개각을 통해 구출하자는 고육지책을 뜻이 다른 정총리와 합세하여 이루려하였던 것이다.
연합전선이 형성되기까지 「이니시에이티브」는 언제나 정총리가 쥐었고 『거취를 같이 하자』는 제의도 정총리가 먼저 했던 것 같다. 정총리는 대여섯차례에 걸쳐 반도「호텔」을 그리고 한번은 북아현동자택으로까지 정의장을 방문, 결행을 재촉했다. 게다가 김종필의원마저 뜻을 같이해왔다. 이만한 포진이면 박대통령도 쉽사리 물리치지못하리라고 판단을 내렸었고, 더구나 위수령, 휴학조치등 소연한 정정속에 개각압력은 주효할 것 같았다. 서둘러 16일로 「타이밍」을 맞춘데는 이같은 저류가 깔려 있었다.
정부·여당 세 실력자의 진언이 공화당에서 말하는 소위 방계집단의 견제에 걸려 깨끗이 거절된 후 정총리가 이끄는 내각은 그대로 살아남았으나, 공화당은 실의와 무기력속에 빠진채 행정부의 시녀로 전락할 수 밖에 없었다. 이때 만약 개각이 단행되어 요구대로 경제각료들을 비롯한 8개부의 경질이 있었던들 오늘의 공화당은 공화당나름으로 좀더 발자한 모습을 띠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집권당의 구실을 제대로 해보려던 공화당의 간절한 소망은 모두 수포로 끝나 허울만의 의제집권당의 신세를 면치 못한채 12월 전당대회를 맞는다. 개각압력의 좌절에서 입은 공화당의 상처는 아직도 가셔지지않은채 당의장자리는 직무대리로 메워져있고 당기구의 기능은 「올·스톱」 상태다.
이 사건을 분수령으로해서 공화당은 행정부에 대한 원심력만을 길러 공화당중심의 개각론과 방계세력 제거주장이 공화당의 꾸준한 구호가 되어버렸다.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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