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에 몸을 내맡긴 뒷거리 청춘 스케치

중앙일보

입력

'분노의 질주' (22일 개봉) 는 지난해 극장에 걸렸던 '무서운 영화' 를 생각하게 한다.

만들었다 하면 1억달러 이상을 투입하는 요즘 할리우드 풍토에서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대작들을 제압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1천9백만달러라는 빠듯한 제작비로 '퍼펙트 스톰' '패트리어트' 를 누른 '무서운 영화' 처럼 3천8백만달러를 들인 '분노의 질주' 도 올 여름 미국에서 안젤리나 졸리의 '툼 레이더' 를 가볍게 제쳤다.

두 영화는 또 철저하게 청소년층을 겨냥한다. '무서운 영화' 가 '스크림' '13일의 금요일' 류의 공포와 10대들의 성적 에너지를 표출했다면 '분노의 질주' 는 대도시 뒷거리의 폭주족을 통해 젊음의 속도감과 자유분방함을 발산한다.

'분노의 질주' 는 사실 새로운 영화가 아니다. 제임스 딘이 열연한 고전 '이유 없는 반항' 이나 지난해의 '식스티 세컨즈' 처럼 자동차 액션은 할리우드의 단골소재이기 때문.

속도감으로 따져도 현재 상영 중인 '드리븐' 에 미치지 못한다. 시속 4백㎞로 자동차 경기장을 날아다니는 '드리븐' 의 프로급 레이서들에 견주어 볼 때 뒷골목을 배회하는 폭주족들은 어쩐지 초라해 보인다.

하지만 '분노의 질주' 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른바 하층문화로 불리는 미국 청소년들의 행태에 초점을 맞춘다.

멋진 자동차 하나만 있으면 그들 세계의 권력과 섹스를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오늘날 미국 젊은이들의 단면도를 읽을 수 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문제가 되는 오토바이 폭주족들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뛰어난 편집술도 한몫했다. 미국 아이비리그의 속내를 다룬 '스컬스' 를 연출했던 로브 코헨 감독은 흔들리는 자동차 액션을 적절히 섞으며 젊음의 욕망과 일탈을 보기 좋게 그려냈다.

하지만 액션을 앞세운 탓에 스토리는 산만한 편이다. 고급 전자제품이 가득 실린 컨테이너를 도둑질하는 도미니크(빈 디젤) 일당의 범행을 밝히려고 위장 잠입한 경찰관 브라이언(폴 워커) 이 도리어 이들의 질주에 동화된다는 내용이다.

또 브라이언은 도미니크의 여동생인 미아(조다나 브루스터) 와 사랑에 빠진다. 경찰관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반가운 얼굴이 있다면 지난해 '삼나무에 내리는 눈' 으로 할리우드에 진입한 한국인 2세 릭윤. 도미니크의 상대편인 동양계 폭주족 우두머리로 나온다.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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