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임기구로…' 베테랑 마약 경찰 충격

중앙일보

입력 2012.12.06 03:00

업데이트 2012.12.06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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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히로뽕 상습 투약사범 이모(52)씨에게 전 서울 구로경찰서 마약팀장 박모(54) 경위는 든든한 ‘빽’이었다. 이씨는 박 경위의 ‘망원’(정보원)으로 마약 수사에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고, 박 경위는 이씨의 ‘민원’을 들어주는 관계였다. 지난해 6월 이씨가 히로뽕 투약혐의로 경기도 부천의 한 경찰서에서 내사를 받게 되자 박 경위는 직접 이씨를 경찰서로 불렀다. 박 경위는 마약 투약 검사에 필요한 머리카락 채취 봉투에 이씨가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을 넣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냈다. 박 경위는 다른 사람 머리카락으로 받은 국과수의 음성 판정을 근거로 이씨에 대한 내사가 종결되도록 했다.

 서울 남부지검은 4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박 경위와 이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이 박 경위가 당시 국과수로 넘긴 모발채취봉투 안에 남은 유전자 흔적을 감정한 결과 이씨와 다른 사람의 것이란 사실을 밝혀냈다. 이번 범행은 박 경위와 이씨가 저지른 또 다른 범죄의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지난해 6월 이씨는 자신과 친분이 있는 마약사범 김모(52)씨를 데리고 박 경위에게 찾아가 “(김씨가) 수배 중인지를 조회해 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박 경위는 경찰 전산망을 통해 수배 중인 사실을 확인해 주면서 “조심해서 다니라”며 김씨를 돌려보냈다. 박 경위는 이 사건으로 기소돼 지난 9월 서울 남부지법에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과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평소 이씨가 ‘나는 마약 수사를 받아도 박 경위가 알아서 빼줬다’고 자주 말했다”는 김씨의 진술을 토대로 두 사람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과 망원의 관계는 보통 ‘악어와 악어새’에 비유된다. 마약이나 조직폭력, 고가품 절도 등 수사에선 망원이 필수로 여겨진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경찰관 A씨는 “범죄 정보를 얻기 위해 과거 자신이 검거했던 범죄자를 망원으로 두는 경우가 많다”며 “범죄자들에게는 ‘경찰 누구와 친하다’는 게 주변 사람들에게 큰 힘처럼 여겨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이 망원의 유혹에 빠져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2010년 서울 용산경찰서 소속 베테랑 마약 수사관이던 이모(당시 47세) 경사는 마약사범 정보원 이모(당시 52세)씨로부터 수백만원씩 받고 체포 시 대응 요령을 알려주고, 경찰 조사 때 콘돔을 이용해 소변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오도록 ‘소변 바꿔치기’를 시도하다 검찰에 덜미가 잡혔다. 경찰대 이웅혁(행정학) 교수는 “수사를 망원에 의존하지 말고 현재 경찰 정보과 활동이 실제 범죄 수사로 이어지도록 정보 수집 체계를 좀 더 체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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