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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구하기 전에 실증해야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해방이래 20년, 일시도 떠날 줄 모르는 고통스러운 불청객은 물가상승과 빈곤이다. 빈곤속에서 이 불청객을 뿌리치려는 안간힘으로 인해서 물가상승이 격화되었다고도 할 수 있고, 빈곤에 물가등귀가 겹치기 때문에 생활에 더 심한 고통을 주기도 했다. 또 그칠 줄 모르는 물가등귀로 경제활동이 옳은 방향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동안에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은 지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경제에 약간의 발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며 물가문제에 대한 국민의 관심에도 발전이 있었다. 처음에는 영문도 모르고 물가는 오르게 마련인 것으로 생각하였고, 경제발전을 위하여 물가상승은 당연한 일이라고도 생각하였다. 그후 점차로 성장은 안정위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하였고, 물가등귀의 주원인은 정부의 [인플레]정책에 있으며 따라서 재정 금융면의 [인플레] 요인제거에 관심이 쏠렸다. 그위에 최근에는 국내독점 또는 과점생산품가격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커져가고 있는데 이것은 생필품에서 시설재에 이르기까지 그 거의 전부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던 상태로부터 국내생산품의 비중이 커졌다는 것, 그리고 국민의 물가에 대한 지식이 독점 또는 과점가격을 운위할 수 있을 정도로 심화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독점 또는 과점업체의 발생이 경제발전이라는 좋은 경향의 부산물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가격면으로 나타나고 있는 사태는 묵과할 수 없는 정도에 달하고 있다. 폐허위에 세워진 우리 공업의 대부분은 시장의 협소와 빈약한 자본축적, 원조와 외부자본에의 의존으로 독점 또는 과점형태를 이루고 소위 특혜의 폭이 줄어들어감에 따라서 판매가격 조작으로 폭리욕을 충족하려는 경향이 노골화하였기 때문이다.
[인플레]로 가격구조가 혼란한 틈을 타서 횡포에 가까운 조작을 하고 있으며 이것은 물가등귀를 선도하고 가격구조를 더욱 혼란하게 하고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정부는 작년에 시도하였다가 좌절된 공정거래법을 성안하여 금년말까지에 입법조처를 끝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그 가부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필자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독점 또는 과점가격이 광범하게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 횡포에 가까운 폐단이 하루속히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을 통감하면서도, [물가조절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폐기하고 [공정거래법]으로 대체한다는 데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는 이유에서도 아니고 경제윤리위원회에 기대하기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공정거래법을 운용하여 소기의 성과를 거둘만한 능력을 정부가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의심때문이다.
종래 독점 내지 과점 횡포를 자행한 예의 대부분은 정부가 가지고 있는 [물가조절에 관한 임시조치법] 및 기타의 의무가 아니라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있는 무기도 유효하게 이용할 의욕이나 능력이 부족하였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여러 상품이 정부가 고시한 가격을 하회하는 가격으로 상당한 기간 거래되었다는 사실, 독점가격으로 가장 비난의 대상이 되고있는 업체들이 정부의 농후한 특혜를 받아왔다는 사실, 가장 유효한 대책인 경쟁상품의 수입허가가 거의 한번도 실시되지 않았다는 사실로 보아서는 표면상으로는 독점가격을 규탄하면서도 실지로는 묵인하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물가면 뿐만 아니라 신통치도 않다는 국정감사로 지적되는 정부의 비위사실은 매년 판에 박은 듯한 똑같은 부정과 부패가 시정되지 않고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공정거래법과 같은 강력한 무기를 요구하려면 정부가 든든한 팔 다리와 공정하고도 정의감에 불타는 두뇌의 소유자라는 것을, 먼저 현재 가지고 있는 무기를 사용함으로써 실증하여야 할 것이다.(필자·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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