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권 문화적 뿌리 짚어본 '이슬람'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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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심장부를 공격해 세계를 경악케 한 '세기의 테러' 용의자로 오사마 빈 라덴 등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지목된다.

아직 단정하기 어렵지만, 그렇다면 '왜 이슬람 세력은 미국을 그렇게 싫어하고, 지난 세기 이래 끊임없는 긴장관계에 놓여있는가' 하는 현상에 대한 근원적 성찰은 요긴하다.

그점은 21세기 문명의 화해와 공존을 위해 결정적일 수 있는데, 우연이지만 타이밍을 맞춰 펴낸 듯한 신간 『이슬람』은 그 재앙의 역사적 원인을 짚어볼 수 있는 효율적인 책이다.

이슬람 현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우리 소장 연구자 12명이 공동 집필해 '우리 시각으로 바라본 이슬람.이슬람학' 이라는 점이 돋보이는 이 책은 미국에 대한 테러를 정신병자의 일회적 돌출행동으로 보게 하지 않는다.

국가 수 55개국에 13억 인구의 이슬람권을 '종교를 넘어 문화적 총체' 로 바라보게 차근히 유도한다.

오랜 준비 끝에 이 책을 펴낸 집필자의 좌장(座長) 인 이희수(한양대.문화인류학)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14일 전화통화에서 "테러가 용인되어선 물론 안되지만 만약 테러 그 자체와 현상에만 주목한다면 오히려 사태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 고 말한다.

이교수의 말은 미국의 학자 새뮤얼 헌팅턴과 또 다른 시각이다. 즉 이번 테러를 기독교권과 이슬람권 사이의 '문명의 충돌' 로 보는 헌팅턴식 견해를 무시할 수 없지만, 이교수는 "중동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폭력사태는 종교나 문명의 갈등이 아니라 빼앗긴 자와 빼앗은 자의 생존권 투쟁" 이라는 측면에 주목하고 있다.

어쨌거나 이번 책은 '현지 문화의 측면에서 바라본 이슬람 미니 백과사전' 이다.

구성을 보면 고대 문명의 시작부터 아랍-이스라엘 분쟁의 실체, 석유문제, 여성문제, 일상생활과 문학과 예술, 그리고 한국과 이슬람의 고대 문화교류에 이르기까지 이슬람에 관한 궁금증을 '미니 백과사전' 형식으로 풀어낸다.

이슬람 문명의 과거와 현재를 미국 등 서구 중심적 관점을 탈피해 바라봄으로써 기존의 제한된 정보로 인한 편견의 교정을 겨냥하고 있다.

대표적 편견으로 책이 먼저 거론하는 것은 '한 손에 칼, 한 손에 코란' 이라는 말의 이데올로기적 함의다. "이슬람 종교는 오히려 포교를 위한 호전적 강요보다 다른 종교와 문화에 대한 관용을 중시하였다" 며 우리의 상식을 뒤집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다 보면 "거기에도 사람이 살고 있고, 독자적인 문명권으로 경탄스럽다" 하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 책을 단순한 문화권 이해를 넘어 긴장감이 있는 현실의 책으로 만드는 것은 제9장 '끝나지 않은 전쟁' 편이다.

무엇보다 이슬람 테러의 현실적 뿌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 지난 50여년 간 얽힌 문제에 미국이 개입하면서부터 심화되었다고 이 책은 진단한다.

조금 더 올라가면 제1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인 가운데 아랍과 유대인들이 각각 독립국가를 염원하는 점을 이용해 영국이 개별적으로 독립을 약속하는 비밀협상을 맺는 데까지 가닿는다.

하지만 영국은 아랍과 유대인의 협상과 별도로 프랑스와는 중동 영토를 분할하기로 비밀협정을 맺는데, 이러한 3중의 모순된 비밀협정이 오늘날 중동분쟁의 불씨로 작용한다.

그렇다고 국제사회가 이 문제를 마냥 손놓고 구경만 한 것은 아니다. 현재 유엔을 주축으로 한 국제사회의 일반적 합의는 1967년 이스라엘이 점령한 영토를 아랍측에 반환함과 동시에 그곳의 일부에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상호 실체 인정-외교관계 수립-상호 불가침 선언-점령지 반환과 그곳의 비무장-합의된 지역에 팔레스타인 국가건설' 과 같은 절차를 밟아가야 할텐데 그 합의를 이스라엘측이 이행하지 않고 있으며 미국은 방조하고 있다고 이 책은 문제제기를 한다.

분쟁과 관련한 이 책의 결론은 이렇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당사자 모두가 과거의 불행한 대립을 청산하고 현실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 공동운명체적 틀을 가꾸어야 한다. "

또 하나 분명하게 해야 할 문제는 테러 그 자체에 대한 시각이다.

이교수는 "하마스.지하드 등 극단주의자들은 이슬람 안에서도 평화의 저해자들로 인식되는 소외된 세력인데, 이를 이슬람의 상징인 것처럼 일반화시키는 것도 문제" 라고 지적한다.

테러를 자행하는 극단적 원리주의는 이슬람 전체의 5% 미만이고, 절대 다수의 이슬람은 서방과의 공존과 협력을 원한다는 것이다.

이교수는 그 근거로 "아랍 22개국 가운데 극단주의자들이 실질적 영향을 행사하는 곳은 라덴이 숨어있는 아프가니스탄 정도며, 그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부조차 대부분 이슬람 국가는 인정하지 않는다" 고 말한다.

그렇다면 언론에 보도되듯이 테러에 대해 '환호하는 아랍인' 들의 사진은 무엇을 뜻하는가. "2천년 동안 살던 땅을 빼앗기고 지난 50년간 극도의 좌절과 패배감에 젖은 사람들의 응어리를 감안해야 한다" 는 게 이 책의 시각이다.

물론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테러도 상관관계가 있는 것이라면 소외돼 왔던 한 쪽의 이야기를 마저 들어보고 그들의 응어리를 풀 근원적 해법을 모색해 볼 기회를 마련한다는 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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