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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文法과 다르다" 세계무대 시선 집중

중앙일보

입력

올 해 6회를 맞는 부산영화제(11월 9~17일) 에서 주목할 일이 생겼다.

일본 영화계의 거장 이마무라 쇼헤이(75.今村昌平) 감독이 부산영화제의 PPP(Pusan Promotion Plan) 에 선정된 것이다.

PPP는 주로 아시아 신인 감독들과 제작.투자.배급사를 연결해주는 자리. PPP에 선정된 감독은 신작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나라야마 부시코' '우나기' 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두 차례나 탄 이마무라 감독이 부산까지 노크한 사연은 무엇일까.

정태성 PPP 수석운영위원은 "일본에선 상업영화가 아니면 아무리 거장이라도 제작비를 모으기 어려운 실정" 이라며 "이마무라 감독도 이같은 고충을 토로한 적이 있다" 고 말했다.

김지석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일본에선 연 1백50편의 영화가 제작되지만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구분이 뚜렷해 작가주의 감독들이 설 자리가 없다" 며 "스타를 대거 기용하고 마케팅에 의존한 영화가 아니면 살아남기 힘들다" 고 설명했다.

양쪽의 대치가 심각해 일본 영화계 전체의 활력이 급격히 떨어졌다는 것이다. 요즘 전대미문의 성장세를 이어가는 한국 영화계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근래 몇년 새 아시아 영화가 세계 영화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달 초 폐막된 베니스 영화제에서 인도 감독 미라 네어의 '몬순 웨딩' 이 황금사자상을, 이란 감독 바박 파야미의 '비밀 투표' 가 감독상을 차지했듯이 칸.베를린.베니스 등 유수 영화제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다.

유럽에선 아시아영화가 할리우드에 맞서는 대안으로 각광받는 모양새다. 부산영화제에도 아시아 영화계를 둘러보려는 유럽을 비롯한 외국 영화인의 발길이 해마다 늘고 있다.

과연 아시아영화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김지석씨는 "한 때 각국에 몰아친 금융위기로 거의 몰락 상태까지 갔던 아시아 영화산업이 서서히 기력을 회복하고 있다" 며 "하지만 국가별로 편차가 심해 아시아 전체를 뭉뚱그려 판단하긴 어렵다" 고 말했다. 각국의 실정을 차근차근 살펴보는 게 한국의 입장에서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요즘의 한국처럼 가장 급신장세를 보이는 곳은 태국. 상반기 자국영화 관객 점유율이 20%까지 치솟았다.

40%를 웃도는 한국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논지 니미부트르.용유스 통큰턴.타니턴 지트나쿨 등 신인감독들의 활약이 왕성하다.

올해 부산을 찾게 될 차트리찰레름 유콘 감독의 '수리요타이' 는 제작비 1백50억원의 대작. 역대 한국영화 중 가장 비싼 영화인 '무사' 의 두 배다.

17세기 미얀마의 침공으로부터 태국을 지켜낸 수리요타이 왕비의 일생을 그린 이 영화는 8월 중순 개봉해 지금도 예약이 3개월치나 밀려있다고 한다. 올해 부산영화제는 태국영화의 현재를 다각적으로 살펴보는 특별전을 마련했다.

담 백한 영상과 진지한 주제로 무장한 이란영화도 순항 중이다.

'비밀투표' 는 물론 칸영화제서 주목받은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칸다하르' 도 부산을 방문한다. 이란영화의 특징은 아프가니스탄.쿠르드족 등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점.

'천국의 아이들' 로 친숙한 마지드 마지디의 '바란' (올 몬트리올 영화제 대상작) 과 아볼파즐 잘릴리의 '델바란' 등이 그런 류에 속한다. 종교.국가의 강력한 통제 속에서도 보편적인 휴머니즘을 추구하는 '이란표' 영화들은 영화의 사회적 역할을 일깨우는 자극제가 된다.

볼리우드로 불리는 인도영화의 기세도 여전하다. '몬순 웨딩' 을 비롯 현재 인도 최고의 제작비를 들여 촬영 중인 '타지마할' 까지 예술영화와 상업영화의 공존이 돋보인다. '몬순 웨딩' 은 부산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반면 대만과 홍콩은 기진맥진하고 있다. 대만의 경우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허우사오시엔(侯孝賢) .차이밍량(蔡明亮) 감독이, 베를린영화제엔 린청셩(林正生) 감독이 경쟁부문에 진출하는 등 돋보였으나 영화산업이라고 할 만한 토대는 황폐해진지 오래다. 1년 평균 제작편수는 15편 미만.

그것도 관객이 적어 1주일 이상 상영되는 작품은 찾기 힘들다.

주도권을 중국에 넘겨준 홍콩 영화도 희망이 사라진 상황. 왕자웨이(王家衛) .프루트 챈 등이 겨우 명맥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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