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주식투자, 하루 앞도 못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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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투자자들은 12일 오전 11시 동시호가가 시작되면서 깜짝 놀랐다.

항공기 테러는 미국 뉴욕에서 벌어졌는데 정작 난리가 난 곳은 서울 증시였기 때문이다.

하한가라도 좋으니 팔아 달라는 물량이 쏟아졌고, 사자 세력은 실종됐다. 개인 투자자들이 몰린 하이닉스 반도체의 경우 하한가에 팔겠다는 주문 잔량이 1억주를 넘었다.

이들은 막무가내로 팔아달라고 매달렸다. 결국 한국 증시는 이날 세계 최고에 사상 최대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같은 시간 한국투신증권 주식운용부의 펀드매니저들은 회의를 열었다. "조심스럽게 지켜보되 일단 종합지수 5백선 아래에선 공격적 매수에 나선다는 원칙대로 가자" 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김종철 주식운용부장은 "서킷 브레이커가 발동되는 폭락장이었지만 꾸준히 주식을 사들였다" 고 말했다.

서킷 브레이커란 주가가 전날 보다 10% 이상 떨어진 상태가 1분 이상 지속되면 20분 동안 매매를 중단시키는 것이다.

투신사들은 이날 모두 1천67억원 어치를 순매수했다.

팔려고 내놓았지만 팔지 못한 많은 투자자들은 몹시 허탈해 했다. 그러나 오후 6시쯤 유럽 증시가 반등하고 있다는 외신에 다시 눈이 동그래졌다.

그전까지 "증시를 개장해 개미들을 죽인 재정경제부와 증권거래소에 항공기 테러를 하자" 는 등의 욕설로 가득찼던 인터넷 사이트에는 "오늘 팔지 못해 오히려 다행" "유럽 만세!" 라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13일 서울 증시는 또 한번의 기록을 세웠다. 세계 최고의 상승률(4.97%)에다 거래량도 10억주가 넘는 신기록을 세웠다.

전날 2백90만주 거래됐던 하이닉스 반도체는 단일 종목으로 사상 최대의 거래량(5억8천만주)을 기록하며 가격제한폭까지 치솟았다.

이와 같이 '도 아니면 모' 식 냄비 증시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 증시의 기반이 허약하고 투기장화했다는 지적이다.

최근 하이닉스가 수억주씩 거래되며 상한가와 하한가를 오가자 강원랜드의 카지노 손님마저 뜸해질 정도다.

KTB 자산운용 장인환 대표는 "개인 투자자들만 탓할 수 없다" 고 말했다.

한국 증시의 변동률이 큰 데다 기업의 배당성향(배당금/당기순이익)이 낮아 개인들이 중장기 투자 대신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단기 차익을 노린다는 것이다.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큰일 났다며 흥분하는 언론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굿모닝증권 도기권 사장은 "개인의 직접투자보다 전문가들이 운용하는 간접투자의 수익률이 높다는 점이 통계로 입증된다" 며 "개인들도 이제 간접투자 비중을 높여야 한다" 고 지적했다.

실제로 12, 13일 개인들은 뇌동매매에 휩쓸려 손실을 본 데 비해 기관투자가들은 프로의 솜씨를 발휘했다.

대한투신의 한 펀드매니저는 "기관들은 폭락장에서 수익을 내곤 한다" 면서 "개인들이 투매에 나설 때 주식을 과감히 사들이도록 훈련을 받는다" 고 말했다.

KTB자산운용 張대표는 "개인들도 단기 흐름을 좇지 말고 조금 길게 보면서 차분해져야 한다" 고 충고했다.

2~3년 후가 아니라 연말까지만 내다 봐도 종합주가지수 5백선이 여전히 바닥으로 유효하다는 것이다.

張대표는 "기관투자가와 외국인 대부분이 5백선 아래에선 매수하겠다는 입장" 이라며 "어차피 개인들은 외국인과 기관의 매매동향을 따라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외풍(外風)에 휩쓸려 단타 매매를 할 경우 손실만 커진다" 고 강조했다.

이철호.이희성 기자 news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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