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대첩 때 사용 추정 총통 3점 진도서 발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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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선조 30년),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수군이 단 13척의 배로 왜선 133척을 물리친 명량대첩. 이 전투에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개인 화기(火器) ‘소소승자총통(小小勝字銃筒)’ 석 점이 전남 진도 오류리 해저에서 발굴됐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소장 성낙준)는 지난달 4일부터 이달 25일까지 오류리 해저를 1차 발굴한 결과 소소승자총통, 돌로 만든 포환, 고려 순청자와 상감청자 등 유물 92점을 인양했다고 28일 밝혔다. 진도 오류리 해역은 명량대첩이 벌어진 울돌목(명량해협)에서 직선 거리로 5㎞가량 떨어진 곳이다. 그간 전남 여수 등지에서 임진왜란 때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총통이 발견됐지만, 명량대첩과 관련된 유물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수군들의 개인 화기

이번에 발굴된 총통 3점은 길이 약 58㎝, 최대 지름 3㎝ 안팎으로 모양과 크기가 거의 같다. 자루 부분에 “만력무자/사월일좌영/조소소승자/중삼근구/량/장윤덕영(萬曆戊子/四月日左營/造小小勝字/重三斤九/兩/匠尹德永)” 등의 명문(銘文·새겨 넣은 글)이 있다. 해석하면 만력(명나라 만력제의 연호)으로 무자년인 1588년 4월에 전라좌수영에서 만든 소소승자총통으로, 무게는 세 근 아홉 냥(2㎏ 안팎)이고, 만든 사람은 장인 윤덕영이라는 뜻이다. 석 점 모두 명문 중 소(小)와 승(勝)자 사이에 한자에서 같은 글자를 표시하는 부호인 ‘エ’ ‘〃’ ‘マ’ 등이 새겨져 있어 유물의 명칭이 ‘소소승자총통’임을 알 수 있다.

 조선 중기 개인용 화기였던 승자총통류 중에는 승자(勝字)·차승자(次勝字)·별승자(別勝字)·소승자총통(小勝字銃筒) 등이 문헌에 나타나 있다. 이번 소소승자총통은 기록에는 없지만, 소승자총통에 비해 총구 지름이 약간 작아 먼 거리를 조준할 때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임경희 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난중일기』 등에는 당시 전라좌수영 군사들이 전라우수영 해역으로 옮겨와 싸웠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증명하는 유물”이라고 말했다.

 ◆보물선도 나올까

이번 발굴 현장은 지난해 11월 문화재 전문도굴단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알려졌다. 도굴단이 노린 장소답게 12~13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고려청자 수십 점도 함께 나왔다. 특히 ‘기린형 향로 뚜껑’은 맑은 비색(翡色)과 기린 꼬리를 말아 올린 형태 등으로 볼 때 간송미술관 소장 ‘청자 기린형 뚜껑 향로’(국보 제65호)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최상품으로 평가된다. 오리형 향로 뚜껑과 청자투각연봉형붓꽂이도 빼어난 조형미를 갖췄다. 연구소 측은 “왕이나 귀족만 사용할 수 있었던 최상품이다. 전남 강진에서 제작한 진상품 청자를 싣고 가던 배가 물길이 거센 이곳에서 좌초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번 발굴에서는 닻돌(닻을 물속에 가라앉히기 위하여 매다는 돌) 9점이 나와 향후 침몰된 보물선이 발견될 가능성도 있다. 수중발굴과 문환석 과장은 “1차 탐사지역은 전체 대상 지역의 1%도 되지 않는다. 충남 태안 마도 앞바다처럼 엄청난 유물이 쏟아질 수 있다”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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