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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거두 민두기 교수,죽음도 안알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환란과 격변의 시절에 좋은 스승과 똑똑한 제자들과 함께 서울대에서 역사학 연구에 뜻을 두어 '특별한 감사와 남다른 자부와 무한한 경외' 를 느낀다는 제자들의 인사치레말에도 감격했던 범부(凡夫)…. "

지난 7일 68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한 민두기 교수가 죽음을 짐작하고 10여일 전 스스로 써 둔 글이다.

이 글은 9일 화장한 뼈와 함께 항아리에 담겨 땅에 묻혔다.

이 땅에 평생 곁눈질않고 학문에만 정진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 학자가 몇이나 될까마는 민교수는 바로 그런 삶을 살았다.

학문 외길의 인생은 작은 '약속' 에서 비롯됐다.

3년 전 그는 자전 수필선에서 "광주서중 시절 가장 가까운 선배가 떠나며 모친께 남겼다는 '제몫까지 공부해달라고 부탁해주세요' 라는 말을 약속으로 간직하고 40여년간 한시도 잊지않았다" 고 술회했다.

서울대 사학과 재학시절 중국사로 방향을 잡은 이래 그는 평생을 여기에 바쳤다.

특히 중국근대사 분야에서 그는 세계적으로 자주 인용되는 많은 논문을 발표했으며, 미 하버드대는 11년 전 그의 논문들을 영역.출간하기도 했다.

자신에게 엄격했던 그는 서울대 동양사학과에서 30년 가까이 가르친 제자들에게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배경한(신라대)교수는 "국내 중국사 연구를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국내외로부터 받고 있는 민선생의 학문적 특징은 한마디로 고증과 객관의 엄격성에 있다" 며 "민선생에게 훈련받은 사람들이 느끼는 이 엄격성에 대한 무게와 인내는 밖으로 소문난 것보다 훨씬 강하다" 고 말한다.

'민총통' 으로 불리는 그 앞에서 사료의 뒷받침없이 섣부른 논리를 폈다가 혼쭐이 나는 일은 다반사고 논문기일만 못지켜도 학위를 받는 일은 포기해야 한다.

이런 혹독한 수련과정을 거친 제자들은 이른바 '민두기 스쿨' 로 학계에 확고히 뿌리를 내렸다.

생활에서도 그의 엄격함은 유달랐다.

8년 전 회갑을 맞은 그는 기념논총을 헌정받는 흔한 일을 마다하고 연보(年譜)식의 자그마한 책자를 자비로 만들어 지인들에게 돌렸다.

이 책 자서(自序)에서 그는 "사회적으로 관심도 거의 받지 못하는, 동행자조차 별로 없는 외로운 길을 그 곤궁 속에서 어쩌자고 무작정 달리기만 했는지 나 자신이 생각해도 약간은 어이가 없다" 면서도 "회갑이 노성(老成)의 표지는 아닐 터이니, 약간의 피곤을 이기고 젊은날의 집념까지는 안가더라도 문제에 대한 강한 도전의식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고 다짐했고 그 다짐을 죽는 날까지 지켜왔다.

자신에게 엄격한 자세는 운명을 앞두고도 마찬가지였다.

백혈병을 앓고 있었으면서도 가족 외에는 전혀 모르게 해온 것은 물론 사망 사실도 알리지 못하게 했다.

겨우 소식을 들은 제자 몇명만이 빈소를 찾았을 뿐이다.

김용덕(서울대 동양사학과)교수는 "민선생님은 세계적인 학자이자 누구보다 엄격하고 양심적인 교육자였다" 며 "선생님의 뜻엔 어긋나겠지만 조만간 제자들이 모여 추모식을 가질 생각" 이라고 말했다.

박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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