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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김정은의 북한 변하고 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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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마이클 그린
미국 CSIS 고문

내년엔 남북관계가 개선될 것으로 거의 모든 사람이 생각하고 있다. 낙관주의자들은 김정은의 젊은 부인과 현대적 라이프스타일을 거론한다. 또 김정은이 권력을 군부로부터 노동당으로 이동시키고 있다는 증거도 있다. 고모부인 장성택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최근 몽골에서 열린 북·일 교섭에 나섰던 일본 당국자는 북한 대표단들이 예전에 비해 훨씬 더 자신감 있고 여유 있는 모습이라고 말한다. 과거엔 군부 통제의 손아귀에 놓인 그들이 단지 준비된 발언만 낭독하는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일본 당국자는 이런 변화가 장성택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군부가 운영하던 2개 무역회사가 내각에 이관되고 총참모장 이영호가 전격 예편되기도 했다. 이와 동시에 북한에선 김정은 우상화 선전이 진행 중이어서 그의 권력이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면 북한에 변화가 임박한 상태인가. 불행히도 위 사례들은 북한의 대남 위협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근거가 못 된다.

 최근 부산에서 북한이 시리아에 수출하는 미사일 부품을 실은 중국 선박이 발각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사건엔 주목할 만한 사실 세 가지가 담겨 있다. 첫째, 북한의 미사일 또는 무기 수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1619호와 1874호의 위반이라는 점이다. 둘째, 시리아 정부는 자국민을 대량학살하고 있다. 셋째, 북한은 2007년 이스라엘 공군이 파괴한 시리아 엘 키바 핵단지의 배후라는 점이다. 북한은 핵확산 활동을 줄이기는커녕 다른 위험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은이 핵 문제에서 유연한 입장을 보일까. 최근 유엔주재 북한 부대사는 “북한은 이미 핵 보유국”이며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며 유엔의 대북 제재를 비난한 바 있다. 군부의 영향력도 전혀 약화되지 않았다. 이영호 총참모장은 예편됐지만, 천안함·연평도 공격의 주범인 김격식이 대장으로 승진했으며 부총참모장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가 한때 상장으로 계급이 강등됐던 건 연평도 공격에 연루돼서가 아니라 한국의 반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때문이었다. 연평도 공격은 김정은이 직접 명령을 내린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군부에 김정은 충성파들이 배치된다고 해서 군부가 핵이나 미사일 능력 강화를 중단하진 않을 것이다. 군부가 운영하는 무역회사가 내각으로 이관된 사실 역시 고무적인 일만도 아니다. 위조지폐 제작이나 마약거래 등은 이미 노동당과 김정은 일가의 지휘 아래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금 주변국 정세 변화를 즐기고 있을 것이다. 남한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상호주의 원칙은 보수당의 박근혜 후보조차 비판하고 있다. 중국 소식통들은 18차 전국대표자회의 이후에도 시진핑(習近平) 총서기가 남북한 간 등거리 정책을 지속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있었던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이명박 대통령마저 중국의 북한 핵무기 묵인정책을 바꿀 것을 요구하지 않고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와의 만남을 거부했다. 오히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와 회담을 열고 일본 군국주의 부활을 비판했다.

 이 모두 평양이 더없이 바라는 동북아시아 상황 전개다. 동시에 미국이 가장 원치 않는 일이기도 하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동아시아정상회의에서 북한 문제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으며 중동 위기 해결에만 관심을 쏟았다. 이런 점들을 볼 때 이란과 미국의 대립이 격화될 경우 백악관 내 대북 강경파가 힘을 얻긴 어려울 것으로 북한은 판단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이 북한과 대화를 재개할 경우 북한의 행동이 정말 달라졌는지를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북한과 대화하는 것 자체는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니다.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도 있고 여건이 개선됐을 때 북한과 어떤 합의를 할 수 있는지를 모색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장은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어떤 징후도 없는 상태다.

 김정은은 권력을 강화하고 불법 활동을 직접 지휘하며 무고한 한국 시민을 공격한 군인을 승진시키는 한편 북한의 외교관으로 하여금 핵 보유국 지위가 변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강변하게 하고 있다. 또 한국 및 미국과 대화를 유도하기 위한 사전 공작으로 일본과 접촉에 나서고, 중동 분쟁이 이익이 될 것이라 보면서 미국과 아시아 각국 사이를 이간질하고, 중국의 대북한 지지가 지속되는 상황 등은 모두 미국과 북한 사이에 새로운 외교적 돌파구가 생길 것으로 예상할 수 없게 한다.

마이클 그린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일본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