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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세제 개편안을 보고

중앙일보

입력

3일 발표된 정부의 세제 개편안은 '낮은 세율ㆍ넓은 세원' 을 기본으로 삼았다. 물론 옳은 방향이다.

소득세 세율 인하, 봉급생활자 및 서민층의 소득세 부담 경감, 부동산 양도소득세율의 종합소득세율과의 구조 일치와 기능 회복 노력, 비과세ㆍ감면의 축소, 증빙불비가산세율 인하(10%→2%, 이는 완전히 폐지해야 옳다) 등은 납세자의 바람을 상당히 받아들인 것으로 평가된다.

그전보다 노력한 흔적이 보이지만 부분적인 개정의 범주를 넘지 못해 아쉽다.

지금의 세제는 세계화가 진전되기 전에 짜인 낡은 틀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거치면서 우리 경제는 세계화로 빠르게 변신하고 있다. 세제도 이에 맞춰 변혁돼야 하는데 이번 개편안은 그렇지 못하다.

첫째, '다세목(多稅目)주의' 를 버리고 세목 수를 줄임으로써 국민이 어떤 세금을 얼마 부담하는지를 예측할 수 있는 세제로 틀을 다시 짜야 한다.

현행 세제는 15개 국세, 17개 지방세 등 32개 세목으로 돼 있다. 극단적인 예지만 영국은 지방세목이 단 두개다.

조세 전문가도 32개나 되는 세목을 모두 기억하기 어렵고 그 세금의 내용을 설명하려면 세법전의 힘을 빌려야 할 정도다.

하물며 세무지식이 부족한 일반 국민은 무슨 세금을 얼마 냈는지, 이번 달에 무슨 세금을 내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이를 바로잡으려면 세제개혁에 부분적으로 접근해선 안된다. 먼저 중앙과 지방간 세원(稅源)배분을 재조정하고 유사 세목을 통합ㆍ폐지하면서 세원간 부담이 형평에 맞도록 조정하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런데 이번 개편안은 이런 개혁방향을 전혀 다루고 있지 않다.

둘째, 우리 세제에는 목적세가 너무 많다. 국세에 3개, 지방세에 5개로 8개나 된다. 그 세수(稅收)규모를 보면 국세의 경우 전체 세수의 19%, 지방세는 8%를 웃돈다.

이는 재정 운용의 경직성을 심화시켜 탄력성을 떨어뜨리고, 경우에 따라선 목적세로 거둔 돈이 낭비될 우려가 있다.

몇년 전 정부도 이를 개편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단체이기주의 내지 부처이기주의에 밀려 손을 놓은 적이 있다.

다시 목적세 폐지에 손대는 일은 세제개혁에서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과제다. 그런데 이번 개편안에는 없다.

셋째, 세제 개편의 큰 그림은 국세만 개선하는 것으론 부족하고, 지방세를 포함하는 넓은 범위여야 한다.

국세와 지방세는 두 중앙부처에서 다룬다. 두 부처는 세수 증가와 그 지배ㆍ관리권을 놓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번번이 세제의 대개혁 구상이 실패로 돌아간 것은 이 때문이다. 세금 부담자가 국민이라는 인식을 새롭게 하면서 세원의 공평한 재배분과 세목의 재정리에 임해야 세제를 개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세제개혁에선 이런 시도마저 없다.

넷째, 정부가 이번에 세제를 통해 기업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법인세 세율을 내리지 않은 것, 지급이자 손금산입 규제를 개선하지 않은 점, 결손금의 소급공제(다른 나라는 통상 3년)와 이월공제(다른 나라는 10년 이상 또는 무한이월공제)를 주요 선진국과 조화시키지 않은 것은 기업관련 세제의 합리화 측면에서 볼 때 미흡한 점이다.

특히 법인세율 28%(주민세 포함 30.8%)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평균보다 높지 않다고 하지만, 유럽연합(EU)의 경제 주도국인 독일과 우리의 경쟁 상대국인 대만의 25%와 비교하면 높다. 선진국들은 기업 세제의 합리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감면 제도의 축소와 함께 우리도 법인세율을 25%(주민세 포함 27.5%)수준으로 낮춰야 한다.

최명근 <경희대 객원교수.조세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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