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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홀딱 반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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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 잘은 모르지만 뭔가 의미심장할 것 같은, 그리하여 그 앞에선 반드시 진지한 표정으로 서 있어야할 것 같은 강박, 보통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러한 강박의 일면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모름지기 예술이란 자유롭게 표현하고 느끼는 것이 분명함에도, 실상 그 영역 밖의 사람들에게 내비치는 울타리의 체감높이는 상당한 것이 사실이다. 누리는 자들에게는 빳빳한 자존심을 세워주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가차없이 소외시켜 버리는 권력자의 배타적 속성을 그대로 지닌 것이다.

그런데, 여기 높고 멀기만 한 곳에 걸린 그림을 달랑 떼내 안방으로 옮겨다 놓은 겁없는 아줌마가 있다. 그녀는 화가도 비평가도 아니고 미술을 전공하지도 않은 '평범이'다. TV로 탑을 쌓아놓은 백남준의 작품을 보고 “와, 저거 다 팔면 돈 되겠다”고 말하는 여자, 어린 딸에게 서슴없이 야한 누드화를 보여줄 수 있는 엄마가 그녀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그림을 보는 시각은 언제나 솔직하고 신선하다. 그녀는 소위 명화라고 인정받은 그림에 주눅이 들거나 거기에 딸려있는 비평가들의 해석 앞에서 주춤거리지 않는다. 요리조리 뜯어보고 툭툭 쳐보기도 하고, 음.. 맛이 괜찮군.. 입맛을 다시기도 하는 것, 이것이 그녀가 그림을 보는 법.

인체의 비례를 깨뜨려버린 엘 그레코 그림을 보고는 요즘의 '깻잎머리 반항아'들을 떠올리고, 피카소의 에로틱한 그림들을 보면서 '노인네가 주책이군' 이라고 입을 비쭉거리질 않나, 달리가 성불능자였으니 그의 그림들이 왜 축 처져 있는지 알만하다고 중얼거린다. 자유롭게 느끼고 서슴없이 말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책이 지닌 가장 매력적인 무기일 것이다.

그러나 거침없음으로만 일관한다면 이 책은 어설픈 아마추어의 치기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터, 여기에 그녀가 내미는 또 하나의 카드는 미술사를 넉넉하게 끌어안는 해박한 지식과 그것을 내면으로 끌어들일 줄 아는 겸허한 자세다.

앵그르와 모네의 그림을 대조시켜 신고전주의와 인상주의의 차이를 한눈에 보여주고, 프랑스 혁명 당시 급진주의자였던 마라의 죽음을 그린 다비드와 뭉크의 그림을 나란히 놓아 신고전주의와 표현주의가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는 그녀의 민첩한 솜씨는 예사롭지가 않다. 또 딸아이의 그림에서 고전주의 미학을 깨닫고, 회사일에 어깨가 축 쳐진 남편의 모습에서 호퍼의 '밤을 지새는 사람들'을 이해한다.

이밖에도 세계의 유명한 미술관에 대한 정보와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도시들에 대한 이야기, 사이버 미술관을 찾아가는 방법이 덤으로 실려 있다. 톡톡 튀는 재미와 쏠쏠한 정보와 그리고 우리 삶의 오솔길에 걸어 둘 몇 편의 그림들을 얻을 수 있는 책. 강추! (김연정/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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