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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어린이를 돕자] 上. 굶주린 400만명 생사의 갈림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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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북한의 극심한 식량난 때문에 북한 어린이들이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중앙일보는 한민족복지재단(이사장 최홍준.부산 호산나교회 목사)과 함께 '2003 북한 어린이 돕기 운동'을 펼치면서 북한 어린이들이 처한 상황과 이들에 대한 지원방안을 살펴보는 시리즈를 2회 연재한다.

"미국 행정부는 정치적 이유로 대북 식량 지원을 줄이거나 중단하지 않겠다."

북한 핵문제로 북.미 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지난 2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이는 북한의 식량난으로 주민들, 특히 어린이와 임산부.노약자 등에 대한 지원이 절박한 실정임을 고려해 핵문제와 식량 제공은 분리하겠다는 의도로 분석됐다.

그러면 최근 북한의 식량난은 어느 정도일까. 아사자가 속출했던 1995~97년보다는 다소 나아졌으나 아직도 심각한 상태라는 게 국제기구나 대북 NGO들의 일치된 견해다.

지난해 11월 북한을 방문했던 세계식량계획(WFP) 제임스 모리스 사무총장은 "외부 지원이 없을 경우 2003년 내에 4백만명의 북한 어린이가 기아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동행했던 제럴드 부르크 대변인도 "함경북도 김책시에 있는 한 소(초등)학교 3학년 학급의 경우 25명의 학생 대부분이 한 달간 주식인 옥수수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고 밝혔다.

그는 "이 학생들 가운데 겨우 세 명만 고기를 먹어본 적이 있고, 나머지는 옥수수 외에 달걀 한 개와 약간의 채소를 먹었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북한을 방문했던 WFP 버티니 사무국장은 "북한 어린이들은 대부분 뼈가 앙상하고 영양실조로 인해 머리카락이 노랗게 변색됐을 뿐 아니라 배가 불룩 튀어나왔다"며 "이들은 문자 그대로 죽어가고 있다"고 참상을 전했다.

2000년 5월 북한 당국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5세 미만 북한 어린이 가운데 약 45.2%가 만성 영양실조에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앞서 WFP.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유럽연합(EU) 등이 98년 9~10월 생후 6개월에서 7세 미만 북한 어린이(1천7백62명)를 대상으로 처음 실시한 전국 규모의 영양실태 조사도 마찬가지였다.

조사대상 어린이의 약 62.3%가 만성 영양실조로 발육이 부진했고, 15.6%는 급성 영양실조로 극도의 쇠약 증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30%는 빈혈 증세를 보였다. 특히 생후 12~24개월 어린이의 3분의 1이 급성 영양실조에 걸린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었다.

이화여대 장남수(張南洙.식품영양학)교수는 "북한 어린이의 영양실조율이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높다고 알려진 방글라데시나 인도의 어린이보다 더 높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북한 당국은 채소.밀.보리 등의 풍작으로 지난해 5월까지 하루 2백50g에 불과하던 식량배급량을 3백50g으로 늘렸지만 이는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최소 섭취량인 7백g의 절반 수준이다.

특히 7.1 경제관리 개선조치 이후 배급제가 사실상 폐지돼 일반 주민은 식량 구하기가 더욱 어렵게 됐다고 한다.

한민족복지재단 김형석(金亨錫)사무총장은 "7.1 조치 이후 북한에서는 물가가 급격히 올라 생필품을 구하기 어렵고, 지방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 심각해 북한 어린이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수십만명의 북한 주민과 어린이들이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직장과 학교를 그만 두고 먹을 것을 찾아 산과 바다를 헤매고 다닌다고 WFP 부르크 대변인이 전했다.

북한 식량난에서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의 대부분이 어린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영양실조에 걸린 북한 어린이들은 면역성이 급격히 저하돼 각종 질병으로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가 작성한 '2002 북한 어린이 건강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5세 미만 북한 어린이 1백만명 중 3분의 2가 급성호흡기 감염증으로, 20% 이상이 설사병으로 고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어린이 사망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설사병은 95년 이후 30%, 급성호흡기 감염증은 25% 정도 증가했고, 이로 인한 사망률은 무려 80%에 달한다고 이 보고서는 밝혔다.

연세대 영동세브란스 이준수(李準洙.소아과)교수는 "어린이의 경우 영양실조가 오래 가면 모든 내장기능과 정신상태에 영구적 이상현상이 생긴다"며 "구체적으론 왜소증.뇌기능 저하.심부전.간부종.시력장애 등 각종 질병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북한 어린이들의 발육 상태는 같은 또래의 남한 어린이에 비해 매우 부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국내의 한 민간단체에서 중국 옌볜(延邊)지역 탈북자 어린이 30명을 대상으로 한 영양실태 조사에 따르면, 탈북자 어린이는 남한 어린이에 비해 작게는 7.5㎝, 크게는 26.7㎝ 정도 키가 작고, 체중도 1.7~20.5㎏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탈북 이후 그나마 영양보충을 한 상태임을 감안하면 북한 어린이들의 신체 발육은 매우 부진함을 알 수 있다.

북한 청소년의 평균 신장이 남자 1m55㎝.여자 1m52㎝이고, 상당수 병사들이 1m60㎝를 넘지 못하는 것도 영양실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金총장은 "북한 어린이들의 영양실조와 그로 인한 각종 부작용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앞으로 우리 민족의 심각한 불행과 상처로 남을 것"이라며 "우리가 그들을 미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진솔하게 전한다면 북한 어린이들에게 훈훈한 동포애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사전 설명 전문>
자강도 희천시에 있는 고아원에서 영양실조로 인해 팔이 쭈글쭈글해진 한 북한 어린이가 힘없이 마루에 누워 있다. 이 고아원에 수용된 어린이의 상당수는 부모가 식량을 구하러 멀리 떠나 이곳에 맡겨졌다고 한다. [유니세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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