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정부 은행법 개정안] 대기업 진출은 어려워

중앙일보

입력

정부의 은행법 개정안은 국내 일반 투자자나 뮤추얼펀드, 금융업에 특화한 그룹들이 보유할 수 있는 은행지분을 늘리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논란의 대상인 산업자본, 즉 제조업 등 금융업이 아닌 쪽으로 특화한 기업들이 보유할 수 있는 은행지분은 계속 4%로 묶고 있다.

산업자본이 은행을 소유해 계열사 지원 등 사금고화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따라서 이는 ▶정부가 보유한 지분을 팔 때 이를 사들일 수 있는 세력을 만들고▶외국인과의 역차별을 없애는 취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정부가 소유한 금융기관의 민영화 계획을 적극 실천해야 한다" 고 강조했지만, 재벌로 불리는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사실상 막은 상태에서 해외매각을 모색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계획대로 은행 민영화가 이뤄질지는 지켜볼 일이다.

◇ 비산업자본 중 누가 은행주인이 될 수 있나=일단 개인이나 뮤추얼펀드.투신사.연기금 등은 은행지분을 10%까지 정부 허락을 받지 않고 매입할 수 있다. 10%를 넘어설 경우 금융감독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대주주의 자격요건, 자기 돈으로 지분을 인수하는지 등을 따진다.

우선 금융업의 비중이 75% 이상이고 총자산이 2조원이 안되는 금융그룹들이 대상이 될 수 있다. 교보생명과 대신그룹은 자격을 갖추었다. 교보는 총자산이 9백억원이고 금융업의 비중이 96.7%다. 대신그룹은 총자산 3천억원에 금융업 비중이 92.6%다.

◇ 대기업 지분 4% 넘길 수 있나=50대 그룹 가운데 은행법 개정안에 따라 당장 은행지분을 10%까지 늘릴 수 있는 기업은 없다.

또 50대 그룹이 제조업의 비중을 줄이면서 은행을 소유하기에는 비용이 많이 든다. 물론 은행주식이 싸기 때문에 주식을 사는 비용은 크게 들지 않는다.

예컨대 납입자본금이 3조4천억원인 조흥은행 지분 10%를 시장에서 사는 데 드는 비용은 1조7천억원(시가총액 기준) 정도다.

서울은행의 경우는 5백억~1천억원이면 지분 10%를 사들일 수 있다. 그러나 제조업을 기반으로 커온 재벌들이 계열분리나 매각 등을 통해 총자산 기준으로 금융업의 비율을 75% 이상으로 끌어올리기는 '도강(渡江)비용' 이 너무 많이 든다는 지적이다.

은행법 개정안의 기준대로라면 현재 지분을 10%까지 늘릴 수 있는 대기업은 동원.쌍용.동양그룹 정도다. 동원은 자산이 1조원대이고 금융업 비중이 70%다.

쌍용은 금융업 비중이 70%지만 총자산이 8조8천억원으로 실현하기 어렵다. 동양그룹은 자산이 5조1천억원인데 9월 1일 계열분리되는 16개사를 빼고 동양메이저를 제외하면 4%를 초과하는 지분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송상훈 기자 mode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