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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 "30代 언니들을 따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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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를 따라라'.

1990년대 남자배구 국가대표 세터였던 이경석 경기대 감독은 36세까지 선수생활을 했다. 정말 드문 경우다. 36세는 고사하고 서른을 넘긴 현역선수도 흔치 않다. 여자선수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올해 수퍼리그 코트에서는 옛 한일합섬 출신의 30대 두 언니가 맹활약하고 있다.

▶이수정(31.LG정유)

90년대 최강에서 2000년대 최약으로 추락한 LG정유는 지난 5일 흥국생명을 3-0으로 완파했다. 수퍼리그 5연패 끝에 승리의 맛을 본 LG정유 선수들은 서로 얼싸안았다. 승리의 주역은 다양한 토스로 상대 블로킹을 무력화한 세터 이수정이었다.

이수정은 98년 소속팀 한일합섬의 해체와 함께 코트를 떠났다가 5년 만에 복귀했다. 김철용 LG정유 감독은 지난해 전국체전에서 '아줌마 배구팀' 경기도체육회의 세터 이수정을 만나 쾌재를 올렸다. 세터 공백을 해결할 적임자를 찾았기 때문이다. 이수정도 코트가 그리웠던 터였다.

LG정유 유니폼을 입은 이수정은 빠르게 적응했다. 지난 3일 최강 현대건설과의 경기에서 가능성을 확인하더니 흥국생명전에서는 빠르고 정확한 토스로 공격의 물꼬를 텄다.

김감독은 "맏언니처럼 후배들을 다독이는 수정이를 중심으로 팀이 뭉치게 됐다"며 "수정이가 완전히 팀에 적응하는 2라운드부터는 더 좋은 결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남순(33.KT&G)

지난해 KT&G를 수퍼리그 결승까지 이끌었던 김남순은 몸이 아파 올해 배구를 그만두려 했다. 하지만 김형실 감독은 김남순을 놓아줄 수 없었다. 그가 팀의 구심점이기 때문이었다.

KT&G 선수들은 한결같이 "남순이 언니가 있어서 마음이 놓인다"고 말한다. KT&G의 성적은 그가 온 후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렸다. 2000년 최하위(5위)였던 KT&G는 김남순이 가세한 이듬해 3위로 뛰어오른데 이어, 지난해에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우승도 꿈만은 아니다. 이번 대회에서 KT&G는 우승후보 현대건설을 3-1로 격파했다. 김남순이 막아서자 현대건설 주포 구민정(레프트)은 위축됐다. 한일합섬에서 한솥밥을 먹을 때는 더없이 친한 선후배였지만 마주서자 김남순의 기가 구민정을 압도했다.

김감독은 "아픈 몸도 점차 좋아지고 있다"며 "공이야 누구라도 때릴 수 있지만, 팀의 정신적 중심 역할은 남순이 외에 해줄 선수가 없다"고 말했다.

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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