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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 반대론자에게 ① 재벌 순익, 상장사의 75% … 양극화 어떻게 푸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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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경제민주화에 우려를 표명하는 진영이 풀어야 할 첫 난제는 양극화다. 재벌 개혁을 비롯한 경제민주화 주장의 시작점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30대 재벌 계열사의 자산 비중은 2010년 이미 전체 상장사의 55%를 넘어섰다. 상장사 전체 순이익의 75% 이상을 대기업이 가져간다. ‘재벌 공화국’이란 말이 나올 법하다. 기업 격차는 곧 근로자 처우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 대기업(종업원 300인 이상)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2000년 214만원에서 10년 후 429만원으로 올랐다. 같은 기간 중소기업 근로자 임금은 월 153만원에서 269만원으로 느는 데 그쳤다. 최정표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 정부가 트리클다운(낙수) 효과를 기대하고 친(親) 재벌정책을 폈지만 효과는 없었고, 오히려 경제력 집중만 심화했다”고 지적했다. 경제 정책을 이끌어 온 전직 경제장관들은 체제 위기까지 걱정한다. 지난 9월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등 13명의 전직 경제장관은 한자리에 모여 “양극화가 심화할 경우 시장경제 체제가 위험해지므로 대기업은 체제 수호의 차원에서 양극화 해소에 앞장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는 재벌의 과오를 그대로 둔 채 넘어갈 것이냐는 질문이다. 대기업 총수의 횡령·배임 사건은 대체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으로 결론난다. ‘붕어빵 판결’이란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면·복권은 관례화되다시피 했다. 주요 대선 후보도 경제민주화에 대한 각론의 차이가 있지만 “불법에 대한 관용은 없다”는 입장은 똑같다. 또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에 따르면 2008~2011년 공정위가 재벌 기업의 담합에 물린 과징금은 매출액의 1.3%다. 반면 이들이 각종 사유를 통해 경감받은 담합 과징금은 애초 부과액의 51.5%에 달한다. 이상승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액 주주의 권리가 침해됐을 때 이를 보상받을 수 있는 소송제도 등을 실효성 있게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 번째 질문은 복지를 어떻게 확대할 것이냐다. 한국의 사회복지지출 비중은 국내총생산(GDP)의 7.6%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34개 주요국 가운데 꼴찌(멕시코)에 가까운 33위다. 경제민주화에 우려를 표시해 온 진영의 대표적 논리는 ‘선(先) 성장, 후(後) 복지’다. 똑같은 레퍼토리가 수십 년간 반복되는 사이 복지 요구는 해가 다르게 급증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속도도 가파르다. 양육·노후에 대한 걱정으로 중산층마저 선뜻 소비를 하지 못하고 있다. 복지가 단순한 약자에 대한 지원을 넘어 경제 구조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 활동만으로는 해결이 쉽지 않은 측면도 있다. 한국의 노동소득분배율은 2006년을 기점으로 하향추세로 전환했고, 피용자보수율(전체 국민소득에서 근로자가 임금 등으로 가져가는 비율)은 51.5%로 OECD 국가 중 여덟 번째로 낮다.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는 “‘좀비 중소기업’을 놔두는 이유 중 하나가 복지 제도가 뒷받침이 안 돼 중소기업이 망하면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빠듯한 재정 탓만 할 게 아니라 복지 문제에 대한 청사진을 내놓는 것이 경제민주화 반대론자들에게 던져진 과제란 얘기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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