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정치는 중국식 제3의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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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낡은 길(老路)도, 그릇된 길(邪路)로도 가지 않겠다.”

 중국공산당 제18차 당 대회의 정치보고에서 제시된 향후 중국의 정치노선이다.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문화대혁명식 구태 정치도, 서구식 자본주의 정치제도도 따르지 않겠다는 얘기다. 좌도 우도 아닌 ‘중용에서 안정을 구하겠다(中庸求穩)’는 이른바 중국식 ‘제3의 길’ 선언이다. 정치보고의 초안 작성 팀장은 다름 아닌 시진핑(習近平) 부주석이었다. ‘시진핑 정치관’의 일단을 드러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시진핑의 중국 정치’는 어디로 갈 것인가? 최근 중국 학계에서 제기된 ‘신(新)정치관’에서 그 방향을 읽을 수 있다. 홍콩 시사 잡지 아시아타임스는 “시진핑은 역대 정치인들을 뛰어넘는 새로운 정치관을 구상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학계에서 ‘신정치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10월 11일 ‘인민일보’ 산하 잡지인 ‘인민논단’이 보도한 궁팡빈(公方彬) 국방대 교수의 논문 한 편이 그 논쟁의 시작이었다. 그는 “중국은 민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만 이론 준비가 부족해서 정치개혁이 늦어질 뿐”이라며 새로운 정치관 수립을 촉구했다. 빈부격차, 부정부패 등 사회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시대에 뒤처진 정치관 때문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궁 교수는 “지금은 민족 독립을 해결한 마오쩌둥(毛澤東)과 민생 문제를 해결한 덩샤오핑(鄧小平)이 이룩한 마르크시즘의 재해석에 필적하는 제3의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의 역대 지도자들은 모두 고유의 정치 방향을 제시해 왔다. 덩샤오핑의 ‘사회주의 초급 단계(중국은 생산력 증강을 핵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초급 단계에 있다)’론, 장쩌민(江澤民)의 ‘정치를 말하자(당의 올바른 정치를 향한 정신운동)’, 후진타오(胡錦濤)의 ‘조화(和諧)세계’ 등이 그것이다. 이들을 잇는 시진핑의 정치 이념이 구체적으로 제시되는 건 권력이 공고화되는 3~4년 후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하지만 간간이 보도된 그의 발언에서 그의 정치관을 추측할 수 있다.

 그는 2008년 당교 개교식 연설에서 “혁명 계급투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혁명 정당에서 탈피해 행정 정당, 집권 정당, 그리고 관리 정당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역사적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그는 또 2009년 2월 멕시코 방문에서 “우리는 혁명·빈곤·기아를 수출하지 않았는데, 일부 배 부르고 할 일 없는 외국인들이 중국 내정에 간섭하고 있다”며 ‘3불론’을 제시했다. 중국 고유의 정치노선에 대한 확신이다.

 이와 관련해 궁 교수는 시진핑 시대 신정치관의 핵심은 ‘창신’과 ‘돌파’이며, 이를 위해 5개 조항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공산주의라는 정치적 신념의 재해석 ▶중화민족의 핵심 가치관 확립 ▶집권당의 정치윤리 건립 ▶당과 대중의 권력분배 재설계 ▶정부·엘리트·평민 각각의 발언권 보장 시스템이다.

 이희옥(중국정치) 성균관대 교수는 “장쩌민의 ‘3개 대표론’과 후진타오의 ‘과학발전관’은 경제와 발전 방식에 치우친 사상이었다”며 “시진핑은 정치개혁론을 제시해 균형을 맞출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교수는 고위 지도자 경선제, 당선자보다 많은 후보자를 놓고 경쟁시키는 차액선거 확대, 당정 분리 등을 신정치관에 담길 내용으로 예상했다. 조영남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신정치관을 시진핑의 정치노선과 연결시키는 것은 아직 이르다”면서도 “소련 공산당의 붕괴, 그동안 이룩한 경제적 성취 등으로 정치개혁이 뒤처져왔지만 이제 더 이상 정치개혁을 늦출 수 없다는 컨센서스를 이뤘다는 점은 적극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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